역사의 쓸모, 수다의 쓸모
역사의 쓸모, 수다의 쓸모
  •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 승인 2020.02.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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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휴대폰에서 쉴 새 없이 `까똑 까똑'소리가 울려댄다. 옛날 영화 속 연인의 집 담벼락에 기대어 `뻐꾹 뻐꾹'소리로 구애하던 사람뻐꾸기가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난다. 모바일 메신저가 그 시절 뻐꾸기를 대신하는 듯하다. 비록 구애는 아니지만 유혹의 까똑 소리 주인공은 책 읽는 모임 단톡방이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던 동료들이 의기투합해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인 지 꼬박 일 년이 되었다.

나에게는 이십여 년 교사로 살면서 생긴 독서 편식 습관이 있다. 수업과 학교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위주로 읽다 보니 독서도 일의 연장이었는데 책모임에서는 번갈아 책을 추천하고 소설, 시, 그림책, 인문학책을 넘나들며 읽었다. 오랜 독서 편식에서 벗어나게 해준 책모임이라 빠지지 않고 챙겨왔건만 이번 달 처음으로 모임이 무산되었다.

다름 아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여파다. 왕관을 의미하는 `코로나'는 태양이나 다른 행성의 가장자리를 둘러싼 빛의 테두리를 지칭하는 단어라고 한다. 편견을 유도할 수 있는 특정 지명이나 동물 이름을 피하도록 한 원칙에 따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명명했다는데, 우주에서 말없이 자리를 지키는 코로나로서는 억울한 일이지 싶다. 책모임을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 애꿎은 코로나의 억울함을 떠올려 본다.

덕분에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나누지는 못하지만 단톡방에 책수다 한판이 벌어졌다. 이번 달 함께 읽은 책은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이다. 책을 읽고 서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역사란 무엇인지, 내가 생각하는 역사의 쓸모는 무엇인지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수다 속 모두의 한결같은 감동은 김육의 삶에 있었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김육은 대동법의 아버지라 불린다. 당시 지역 특산물을 세금으로 내던 공납이 과도해지자 폐해는 백성들의 고통으로 오롯이 돌아갔다. 공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안이 쌀로 세금을 내는 대동법이다. 대동법은 집집마다 부과하던 공납을 토지 한 결마다 세금을 매겨 땅을 가진 사람만 세금을 내게 된다. 일반 백성에게는 감세인 반면 양반 지주에게는 증세인 셈이다.

김육은 20대에 과거에 합격하고도 신념을 지키느라 조정에 투쟁하다가 귀농을 한다. 50대가 되어 비로소 정치를 시작한 김육은 대동법 확산에 그야말로 인생을 바쳤다. 기득권의 반대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대동법을 주장하며 죽는 날까지 대동법 시행을 간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김육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삶을 던져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생의 화두가 무엇인지, 평생을 다해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말이다. 김육의 일생을 읽으며 이야기의 행간을 우리의 것으로 채운다. 조금 덜 부끄러운 삶,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는 삶, 가진 것을 나누는 삶, 누군가를 돕는 삶. 잊고 있던 삶의 방향을 서로 나누며 잠시 숙연해진다. 이것이 역사의 쓸모요, 우리들 수다의 쓸모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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