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탓에 잃어버린 추억
바이러스 탓에 잃어버린 추억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0.02.12 2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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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우리는 살면서 어느 순간 고비를 맞는다.

돈 때문일 수도 있고, 사람 때문일 수도, 직장 때문일 수도 있다.

선거 철이 다가오니 정치인들은 낙선의 쓴맛을 떠올릴 수도 있다.

힘든 순간 주저앉고 싶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는 추억을 소환한다.

누구는 뒷산을 누비며 오디를 따먹고 실개천에서 물장구치던 유년시절을, 또 누구는 첫 외식으로 무뚝뚝한 아버지 손에 이끌려 들어간 중국집에서 먹었던 짜장면의 맛을 되뇐다.

가장 힘들었던 일도 늘어난 주름살 앞에서는 추억이 된다.

나이 들어 떠올린 추억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지만 살면서 부둥켜안고 싶은 삶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추억이란 당신의 몸을 안쪽에서부터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기성세대에겐 경주로 갔던 수학여행도, 배 타고 하루 반나절 걸려 도착했던 제주도 졸업여행도, 밀가루 뒤집어썼던 졸업식도, 달리기하다 넘어졌던 운동회도 모두 추억거리다.

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 요즘엔 바이러스 탓에 소환할 추억조차 만들 수 없는 시절이다.

중국으로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으로 많은 학교가 졸업식과 입학식 행사를 줄줄이 취소했다.

우한 폐렴 확산을 막겠다며 교육부는 전국 대학에 단체 행사 자제를 권고하면서 많은 대학이 학위수여식과 입학식,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취소했다.

대학 졸업장 취득하기가 취업하기보다 쉬운 시절이긴 하지만 그래도 부모들은 학사모 쓴 자식의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취업을 못했어도 고생한 부모에게 학사모를 씌워주고 싶은 자식들도 많다. 졸업식을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격려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결국 올해 대학 졸업식과 입학식에 대한 추억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통째로 사라졌다.

일선 초중고 학교의 졸업식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단체로 강당이나 운동장에서 하던 예년 졸업식과 달리 올해는 학생들은 교실에 앉아 모니터로 교장선생님의 축사를 듣는다. 부모들은 졸업식을 보지도 못한 채 운동장이나 교문 밖에서 대기하는 신세가 됐다.

2015년엔 메르스 사태로 초중고 학교의 단체 활동이 무더기로 취소됐다. 당시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가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상향 조정되면서 각 학교의 수학여행과 수련활동, 체험 활동은 중지됐다.

2009년엔 세계적으로 신종플루가 유행하면서 수학여행, 체험 활동. 운동회가 줄줄이 취소됐고 결국 학창시절의 추억은 쌓을 수 없었다.

2014년엔 바이러스가 아닌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면서 일선 학교에서는 수학여행이 전면 중단돼 많은 학생의 머릿속에 수학여행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1999년생들은 신종플루부터 수능 연기까지 모두 다 겪은 비운의 세대 원조라고 말할까.

이들이 11살이던 2009년엔 신종플루가 유행했다. 중학교 3학년 되던 2014년엔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났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듬해인 2015년엔 메르스가 세계를 강타했고, 2학년 때는 대통령 탄핵 사태를 목격했다. 수능 시험을 치르던 고3 시절엔 포항지진으로 수능 시험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기성세대들은 친구들과 둘러앉아 학창시절 추억거리로 회포를 풀 수 있지만 젊은 세대들은 창궐한 바이러스 탓에 운동회, 졸업식, 수학여행에 대한 추억은 없고 마스크 쓰고 등교했던 일만 떠올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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