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마다 오는 딜레마
4년마다 오는 딜레마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02.1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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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말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을 논리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분제 사회가 무너지면서 말하는 법, 글 쓰는 법 과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신분제가 무너지면 신분 대신에 말솜씨가 출세의 기준이 되었다. 대중 앞에서 현란한 말솜씨로 상대를 제압하면 권력이 굴러들어온다. 말을 잘하면 부와 권력을 움켜쥐는 일이니 요즘의 대입과외처럼 과외 열풍이 불었고, 이때 고액의 강사료를 챙기면서 젊은이들을 가르쳤던 이들이 후에 궤변론자로 알려진 소피스트(sophist)였다. 소피스트들은 논증의 기술, 곧 논리를 보편화시킨 인물이다.

후대의 논리학(logic)은 말로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 곧 말싸움(논쟁술, eris tic)에서 시작한다. 소피스트들의 말싸움과는 다른 방식으로 논리를 발달시킨 인물들이 그 유명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이들의 논리학은 현실 사회에서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세속적인 목표가 아니라 영원불변의 진리를 탐구하는 도구이다. 진지하고 숭고한 목표를 가진 논리학의 대가인 이들은 세속적인 소피스트들의 논리를 경멸한다. 소피스트들이 궤변론자라는 경멸적인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진리의 논리라는 점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소피스트들의 논리와 차별화된다. 그럼에도 이들의 논리는 소피스트들의 말싸움 논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말싸움은 상대를 제압하고 내가 옳다는 걸 보이는 절차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이들의 논리적 사유를 정당화(justification)라고 한다. 어떤 주장이 참되다(옳다, just)는 걸 보이는 것이 이들의 논리학이라는 말이다. 스스로가 옳다(just)는 걸 보이는 기술이나 방법(justification)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논리학과 소피스트들의 논리학은 같은 궤를 걷고 있다. 그래서 서양의 논리는 자기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곧 내가 옳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서양적 진리는 나를 정당화하고 현실 속에서 바로 세우려는 의도를 갖는다.

서양적 진리, 논리는 스스로가 못난 놈이고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바뀌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자기를 돌아보면 볼수록 스스로가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나이가 들면 가장 일반적으로 깨닫는 말: 세상 일 뜻대로 안 된다. 대부분 사람은 세상이 돈짝만 하게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하고 말싸움해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도 못하고 절대적인 진리를 찾아 자신의 삶을 빛나게 하고 싶은 생각도 잘 못한다.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각종 말이 난무할 것이다. 티브이 토론에 나와 서로가 자기를 선택해달라고 호소할 것이며 또 서로 논쟁을 벌일 것이다. 말로 치열하게 싸우는 걸 보는 건 재미있다. 그것도 싸움구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리는 놈보다 맞는 사람에게 동정이 가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정서이다. 우리는 티브이 토론에서 엄청나게 깨졌지만 선거에 이기는 사람을 종종 본다. 깨지는 사람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한 표를 호소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 어려울 것 같다. 지면 무능하다고 하고, 이기면 야박하다고 하니 어찌하면 좋을까? 찍어야 하는 사람 입장도 만만치 않다. 지는 놈은 일을 못할 것 같고 이기는 놈은 찍어주면 코빼기도 안 비칠 것 같다.

말싸움은 구경삼아 보고 정말 인간이 된 놈을 뽑자. 어느 게 인간이냐구? 어렵다. 자신이 정말 보잘 것 없고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있는 인간이 우리랑 가까운 인간이 아닐까? 잘난 놈보다는 스스로의 못남을 깨우치고 있는 인간이 나을 것 같다. 정치하는 인간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나? 글쎄 그래서 디오게네스는 한낮에 사람을 찾기 위해 램프를 들고 다녔나 보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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