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의 정형화와 '기생충'
절정의 정형화와 '기생충'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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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절정에 이른 것은 대체로 정형화된다.'

봉준호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관왕을 차지했다는 쾌거를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내 머릿속은 이 문장에 온통 지배되었다.

최초의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92년 아카데미상의 흐름을 바꾸었다는 역사성도, 한국인 첫 감독상 수상, 아시아 작가의 각본상이 처음이라는 족적의 위대함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일이다.

지구촌의 내 노라 하는 영화상을 휩쓸고 있는 `기생충'은 `지금, 여기'의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며 `절정'의 백미로 손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 `절정'은 영화`기생충'이 제기한 수많은 이야기와 반전을 모범 답으로 삼는 일정한 흐름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기류가 한국 영화 특유의 차별적 정형화로 자리 잡으면서 지구촌 영화판에 각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아카데미상은 미국의 영화 잔치에 불과하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에 대해 `로컬(Local)'이라고 뼈있는 농담을 했을 때, 내 가슴은 짜릿하고 서늘했다. 한꺼번에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무작정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경계의 몫이다. 아카데미상의 영향력은 결코 미국에 국한하지 않는다. 그 상은 이미 지구촌 모든 영화인들에게 선망이 대상, 즉 `절정'의 경지에 우뚝 서 있고 영화 자본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아카데미 특유의 `정형화'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감독과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차지함으로써 `절정'의 자리에 올랐다. 이로 인해 앞으로의 한국영화는 더 커다란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되는 `정형화'의 기틀을 확보한 셈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절정'의 익숙함에 도취해 막무가내의 모방이 난무하고, 난잡한 아류를 쏟아낼 경우 `정형화'는 전범(典範)이 아니라 사고의 고착화와 경직성의 병폐를 만들기 마련이다.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씨는 “한국바둑이 세계를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참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직설을 남긴 바 있다. 간섭하지 않으니 스스로의 창의력이 커지고, 이를 바탕으로 상상하기 힘든 묘수가 나타나 수많은 반상의 기적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대학입시를 향해 모든 역량이 집중되는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특히 주입과 암기를 점수 획득의 강력한 통로로 삼는 교육제도에서 봉준호 감독이거나 BTS가 문화 예술의 대중성을 선도하는 슬기로운 성과는 기적에 가깝다. 그 젊은 장인들의 성공방식은 세상을 보는 진지한 사고방식과 사람들 사이, 관계의 의미를 깊게 살펴보는 창조적 상상력에 있다.

BTS의 국내 기반은 전 세계적 열광에 비하면 든든하지 않다.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의 국가 역할이거나 기성세대에 대한 은근한 도전과 저항, 그리고 상처받는 청춘에 대한 위로의 내용을 담은 그들의 노래를 여전히 불편해하는 꼰대들의 세상은 (한국에서)여전히 그득하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와 소통했고, 불안한 세대와 호흡하면서 공감대를 만들었으며, 따뜻하고 깊은 의미로 젊음을 보듬으면서 그들과 함께 세상의 거추장스러운 장벽을 뛰어 넘었다.

봉준호는 세상의 모순을 읽어내면서 영화라는 언어를 통해 그 모순과 갈등의 극복에 대한 서사적 진술에 게으르지 않다. 그는 주한미군의 존재와 남북분단의 현실, 그리고 은폐되는 환경오염에 대한 경고를 `괴물'을 통해 상징적으로 은유했으며, 눈으로 뒤덮인 세상에 갇힌 채로 무한반복으로 순환하는 `설국열차'를 통해 기후위기와 극단적 상황에서도 견고한 인간의 `계급'에 대한 허실을 그려냈다. `옥자'를 통해 유전자 조작과 육식에 대한 탐욕을 경고한 봉준호는, 마침내 `기생충'을 통해 숙주가 존재하는 비극적 인간 현실과 거듭되는 반전으로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길을 확보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고, 디테일을 무기로 `절정'을 이끌어 낸 봉준호의 길 또한 세상을 보는 올바른 눈과 섬세하고 따뜻한 배려, 그리고 깊은 사유를 포함한 의미로 만들어진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은 우리에게 레드카펫과 턱시도와 드레스의 화려하고 특별한 정형성을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제 `기생충'에 숨은 뜻을 더 깊게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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