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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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0.02.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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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어깨와 팔이 뻐근하다. 손가락 마디는 구부리기 힘들 정도로 욱신거리고, 손바닥은 가죽을 한 겹 덧씌운 듯하다. 워낙 몸뚱이 움직여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오늘따라 몸이 아프다. 체력의 한계인지 몸을 혹사한 건지, 행복한 노동의 대가가 예전과 다르다. 그래도 몸이 말하는 증상과 달리 가슴은 말끔하게 정리된 녀석들을 떠올리며 다음 주말을 기다린다.

파르스름한 새벽 기운이 주변을 에워싼다. 휴일의 새벽 공기는 평일의 공기보다 맑고 상큼하다. 기분 좋은 공기다. 커튼을 젖히자 동이 트는 햇살을 서릿발이 영롱한 빛으로 반긴다. 서릿발이 채 녹기도 전에 현관문을 박차고 나간다. 이런 아직 때가 아닌가? 꽤 춥다.

햇살이 거실 창을 통해 따사로운 온도로 배어들 즈음, 몇 달 동안 방치했던 나의 행복한 일터로 간다. 얼마나 기다렸던 발길인지 망설임 없이 톱과 전정가위, 사다리가 손에 들렸다.

제일 먼저 손길을 반기는 건 밤나무다. 작년에 달았던 밤톨, 밤송이, 나뭇잎을 죄다 떨구고 삭풍을 맞아가며 듬직한 위세를 자랑하는 나무다. 부러진 가지, 말라죽은 가지, 하늘을 향해 직각으로 뻗은 가지를 잘라낸다. 말라죽은 가지는 톱날이 튕길 정도로 단단해져 있다.

다음은 복숭아나무.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나무가 병이 들어 밑동째 넘어갔다. 노간주나무를 타고 올라간 칡넝쿨을 걷어내고 주목으로, 대추나무로 사다리 발을 올라타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햇살의 이동을 담아 타임랩스로 제작해도 될 만한 움직임이다.

너무 욕심이 많았다. 나무가 많아도 너무 많다. 빼곡하다 못해 이젠 대전 중인 나무들에 햇빛과 바람을 넣어주는 손길이 분주하다. 나무에 가장 큰 손길이 가는 시기는 수목의 휴면상태인 2월부터다. 몸살을 적게 주며, 수형을 바꿀 시기가 이때다. 그래서 고민은 오래, 손길은 전광석화 같다.

같은 수종이라도 어느 위치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주목은 울타리 역할을 하는 녀석이 있고, 입구 양옆으로 원추형기둥과 같은 형태로 가지런히 서 있는 녀석, 키는 낮지만 굵은 밑동에 분재와 같은 위용을 자랑하는 녀석에 따라 가위질이 달라진다.

고민은 어떤 수형으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깊이가 달라진다. 꽃을 달거나 열매를 다는 녀석들의 고민은 더하다. 꽃이 지고 바로 꽃눈이 생기는 등나무와 1개월 정도 여유가 있는 철쭉류는 가위질 시기가 다르다. 시기 파악을 못 해 손을 댔다가는 꽃눈이 형성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초여름에 꽃눈을 만들어내는 배롱나무는 봄까지 여유를 두어도 된다. 열매를 다는 나무도 올해 자란 가지에서 달리는 게 있고, 작년에 자란 가지에서 열매를 다는 나무가 있다. 나무마다 특성을 파악하고 순서를 정하고 수형을 정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느티나무나 잣나무 종류는 손을 안 대도 된다. 알아서 정리해나간다. 가끔 삭정이나 끄집어 내려주면 된다. 나무 욕심이 많다 보니 없는 나무가 없다. 그러니 신경 쓸 녀석들이 너무 많다. 초본류도 씨를 뿌려 발아시키는 시기가 다르다 보니 육체적 노동이 아니라 정신적 노동에 더 가깝다. 나무별로 연구하고 기록하며, 고려할 사항이 알면 알수록 커진다. 그래도 나무별로 수종의 특성을 파악하고 형태를 잡아가는 데 도움이 되니 행복한 시간이다.

내가 하는 일은 빈번한 손길이지만, 단순하다. 수종별로 특성에 맞춰 식재하고, 햇빛이 고루 들어갈 수 있게 하고, 바람이 잘 통하게 하는 게 전부다. 나무는 알아서 큰다. 괜스레, 억지로 형태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물을 좋아하는 나무를 모래땅에, 햇빛을 좋아하는 나무를 음지에 심지만 않으면 된다. 나무의 특성은 명백하다. 인위적으로 형태를 만드는 분재도 특성을 고려해 수형을 잡는다. 나무에 손길을 주는 것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해 나름의 특성에 맞는 가치를 갖고 커다란 나무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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