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여자
이상한 여자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20.02.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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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문학회 행사가 끝나자 그녀가 내게로 다가왔다.

“ 나보고 이상한 여자래요.”

“ 내가 봐도 이상해요.” 얼굴을 마주 보고 웃으며 향기를 맡는다. 은은하게 다가와 강하게 취하게 하는 분명히 이상한 여자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향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봄꽃보다 화사한 미소가 편안하다.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입춘은 지났지만, 아직 봄을 떠올리기에는 이르다. 오히려 동장군의 맹위가 한창이다. 그래도 봄은 겨울의 등을 떠밀고 있나 보다. 바람이 목청을 높이기 시작한다. 마당 끝 도랑물이 졸졸 흐르고 근처 산속에서 노란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이다. 봄꽃 만발하려면 멀었는데 나는 며칠 전부터 그녀의 향기에 젖어 호사를 누리고 있다.

문학회 행사가 있기 며칠 전이었다. 몇 명이 찻집에 모였다. 각 문학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문우들이다. 단체마다 회원 수는 많아도 일을 맡아서 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로 자리가 무거웠다. 임원 구성하는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어서 최근 한 단체의 장을 맡은 나로서는 신경이 예민해 질 수밖에 없었다. 화제의 틈새를 이용해 총무를 맡아 줄 사람이 마땅치 않다는 말에 옆에 앉은 그녀가 선뜩 그 자리를 맡아 준다고 한다. 충북을 대표하는 한 여성단체장을 지낸 사람이라 믿을 수가 없어 재차 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잘못된 것이냐는 말이 당당했다. 낮은 직책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면 그보다 높은 직에 있었던 것을 상기시키며 거절하는데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사회적 집단, 가령 흑인과 백인, 여자와 남자, 돈 많은 사람과 가난한 사람, 지위가 높거나 낮은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편견을 떨쳐 버리려고 노력하지만, 잠재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암묵적 편견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날 찻집에서도 그랬다. 그녀는 봉사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이었지만 회장을 역임한 사람이 총무를 맡아 준다는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감성 중에 제일 사나운 것이 자존심인데 그녀는 진정한 고수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상대에게 다가가는데 어리석게도 편견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는 문학이라는 말뚝에 스스로 묶였다. 굴레를 벗어나지 않으니 맡기는 일도 많았다. 주춤거리면 등을 밀어주고 내 안의 끼를 발산할 수 있도록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것도 문학이었으니 가끔은 힘에 겨워도 좋았다. 이곳에서 만난 호연들에게 도움 받는 일이 더 많아서이기도 하다. 곁에서 문우들이 농담 삼아 이상한 여자라고 했던 그녀도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호연중의 호연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날 찻집에서의 시간은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날로 기억될 것이다. 어떤 것도 고정 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이상한 여자의 향기,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듯해지고 코끝이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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