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도시 ‘대머리(大村) 청주’를 바라보며 우뚝 선 무농정
큰 도시 ‘대머리(大村) 청주’를 바라보며 우뚝 선 무농정
  •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 승인 2020.02.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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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복잡한 도심 사거리 언덕에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듯 서 있는 정자 건물이 하나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에 있는 무농정이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85호로 지정된 `무농정'은 청주한씨의 시조인 한란(韓蘭) 유허지의 성격이 강한 곳으로 이곳 일대가 속칭 큰 대머리 마을 언덕 청주 한씨들의 본거지로 알려졌다. 1688년(숙종 14)에 세운 `무농정비'에 새겨진 기록을 보면, `무농정은 우리 시조가 아직 출세하기 전에 임원(林園)에 은거하면서 들을 향하여 정자를 세우고, 여기서 농정의 시책을 연구함으로 인하여 정자의 이름을 무농정이라 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한란의 후손인 한익저가 숙종 14년에 폐허화되어 있던 무농정의 옛 터를 찾아내어 무농정지를 표시하는 유허비를 세웠다. 앞뜰 좌측에 위치한 무농정 유허비는 높이 93.5㎝, 아래 너비 37㎝, 윗너비 41.5㎝, 두께 185㎝의 둥근 머리 모양이며 대략의 연혁이 쓰여 있다.

`무농정'은 한란이 청주시 남쪽의 넓은 들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인 현 위치에 정자를 짓고, 농사에 힘쓸 것을 권장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무농정 지표석 옆에서는 `무농정지'라고 적힌 쌀가마 형태의 조각물을 볼 수 있다.

대머리 공원에 우뚝 서 있는 무농정의 서편에 작은 일각 대문이 있고, 주위 사면에는 돌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건물로 내부는 웃물마루에 난간이 둘러져 있다. 서쪽의 정면 처마 밑에 `務農亭(무농정)'이라 쓴 편액이 달려 있다.

1949년 후손들이 정자가 있던 옛 터에 시멘트로 중건했다가, 1988년 목조기와집으로 재건축한 것이 현재의 무농정 건물이다. 정자 안쪽에는 중건시의 관련자 명단을 새긴 여러 개의 편액도 볼 수 있다.

무농정 건물 주변을 대머리 공원으로 조성하여 시민들의 산책과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접근성 좋고, 아담한 도심의 공원에 심겨져 있는 푸르른 나무들이 화려한 단청과 아름다운 기와를 만나 더욱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넓은 청주의`남들'을 바라보며 농사와 관련된 국가의 정책을 연구하고, 영농방법을 연구하여 농민들에게 농사를 장려하는 건물이 바로`무농정'이다.

그런데 이제는 드넓은 들판이 모두 아파트로 변모되고, 소달구지가 한가롭게 지나다니던 농로는 왕복 8차선의 대로로, 그리고 무수히 많은 자동차들이 홍수를 이루는 상전벽해의 세상으로 변했다. 이 건물에 서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고, 미래의 세상을 준비하며 꿈꿀 수 있는 곳이 바로 `무농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농사를 장려하는 `무농정'옆 대머리공원에도 농사와 관련된 24절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계절의 변화와 기후를 예측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예컨대 경칩은 동물이 동면에서 깨는 절기이며, `청명'은 모든 것이 맑고 밝아 활기찬 절기라는 의미를 알 수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집 주변에 산책을 하며 무농정과 대머리공원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며 소소한 행복을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란다. 대머리 공원의 산책로를 걸으며 옛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24절기를 하나씩 알아보는 재미도 느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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