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원량이 남긴 것
리원량이 남긴 것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0.02.10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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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나는 전선에서 탈영병이 되지 않겠다”.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처음으로 폭로한 리원량(34)이 죽기 8일 전에 한 말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중국 언론매체 차이신(財新)과 원격 인터뷰를 했다. 당시 그의 건강 상태는 꽤 심각했다. 폐 기능에 심각한 이상 징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일선에 복귀해 환자들을 돌보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건강을 회복하고 나서 다시 (환자들을 위해) 일선으로 가려고 한다. 현재 질병이 확산 추세에 있다. 전선의 탈영병이 되고 싶지 않다”고 복귀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다. 하지만, 그는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지난 6일 급격히 병세가 악화해 다음날 새벽 3시께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가 사망하자 중국 전역에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중국의 카카오톡으로 불리는 웨이보와 위챗 등 SNS에서 `리원량 의사가 사망했다'는 해시태그 글의 조회 수만 6억7000만건에 달했다.

중국인들은 리원량을 의인으로 기리는 분위기다. 그가 자국민을 위해 불이익을 감수하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최초로 폭로했기 때문이다.

중국 후베이성 소재 우한중심병원의 평범한 안과 의사였던 그는 지난해 12월 30일 호흡 곤란 환자의 검사 보고서를 보게 됐다. 보고서에는 해당 환자에게서 2003년 전 세계를 공포로 떨게 한 사스(SARS)와 매우 흡사한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는 즉각 의사들이 150여명 모여 있는 채팅방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같은 증상의 환자가 또 다수 있다는 동료 의사들의 답글이 올라왔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리원량을 비롯한 의사 8명은 즉시 `우한시 화난 수산물 시장에서 사스 유사 환자 7명이 발생했다'는 내용을 알리기 시작했다. 전 세계를 공황상태에 빠지게 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처음 일반에 공개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 공안(경찰)은 곧바로(1월 3일) SNS를 차단하고 리원량을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전염병 창궐 소식을 전한 리원량 등 의사들은 잘못을 인정하는 자술서를 쓰고 `다시는 유언비어를 유포하지 않겠다'는 교육까지 받고서야 간신히 풀려났다.

이미 이때는 1000여명 이상의 확진 환자가 발생할 정도로 신종 코로나 감염증이 창궐한 상황이었다.

리원량이 사망하자 여론은 비난의 화살을 우한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시진핑의 중앙 정부에 퍼붓고 있다. 일부 언론은 그의 사인을 초기 경찰 체포 과정에서 스트레스로 꼽을 정도로 여론은 정부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급기야 주말에는 중국 정부에 반발하는 지식인들의 성명까지 나왔다. 우한 화중사범대학의 탕이밍 국학원 원장과 동료 교수들이 공개 서한을 통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성명에서 리원량의 경고가 유언비어로 치부되지 않았다면, 모든 시민이 진실을 말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면 국가적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진핑 정부의 수도인 베이징에서도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베이징대 법학 교수는 “리원량의 사망일을 언론 자유의 날로 지정하자”고 제안하며 “더 많은 사람이 두려움에 침묵을 지킨다면 죽음은 더 빨리 찾아올 것이며, 언론 자유를 탄압하는 체제에 맞서 이제는 `노(No)'라고 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집권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한 시진핑 체제. 자국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바이러스 공포에 떨게 한 `원죄'를 중국 정부가 어떻게 털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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