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지 맑은 물에 비치는 정자, 제천 영호정(暎湖亭)
의림지 맑은 물에 비치는 정자, 제천 영호정(暎湖亭)
  • 김형래 강동대교수
  • 승인 2020.02.09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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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김형래  강동대교수
김형래 강동대교수

 

삼한시대 마한 땅이던 제천은 4세기 무렵 백제 영토가 되었다. 그 후 고구려 땅이 되어 내토군(吐郡)이라 불렸고 청풍은 따로 사열이현(沙熱伊縣)이라 불렸다. 늦어도 5세기 말에 이 지역은 신라에 편입되었으며 조선 태종 때 제천현이 되었다.

제천시 모산동의 의림지는 밀양 수산제, 김제 벽골제, 상주 공검지와 함께 삼국시대에 축조된 인공 수리시설이다. 제천의 남쪽은 남한강 줄기가 동에서 서로 가로질러 흐르는 덕분에 물 사정이 좋지만, 차령산맥 줄기가 이어지는 북쪽은 물이 아주 귀한 편이었다. 이런 이유로 제천시 북쪽 끝자락 용두산(龍頭山, 871m) 아래 계천을 막아 축조한 저수지가 의림지이다.

전해오기로는 신라 진흥왕 때 악성 우륵이 쌓았다고도 하며, 또 그로부터 700년쯤 뒤에 박의림이라는 현감이 쌓았으므로 의림지라 부른다고도 한다. 제천의 고구려적 이름인 `내토(奈吐)'나 신라 때 이름인 `내제(奈堤)'가 모두 큰 둑이나 제방을 의미하므로 의림지의 역사가 깊은 것은 확실하다. 충청도 지방의 별칭인 `호서(湖西)'라는 말도 이 저수지의 서쪽이라는 뜻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의림지의 본래 이름은 우거진 숲 속에 있다고 하여 `임지(林池)'또는 둑에 버들이 우거졌다고 하여 `유지(柳池)'라고 했다. 그러다가 고려 성종 때 전국 군현의 명칭을 개정하면서 제천을 의원(義原) 또는 의천(義泉)이라 하였으므로 임지(林池)에도 `의(義)'자를 붙여 의림지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후기 문신인 김이만(金履萬, 1683~1758)은 고향 제천지역의 아름다운 풍광 여덟 곳을 설정하였는데, 의림지에서 낚시하는 노인을 제1경, 의림지의 안개 낀 나무(林湖烟樹)를 제2경으로 꼽았다. 조선후기 산수화가 이방운(李昉運)도 그가 그린 서화첩 「사군강산참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에 나오는 명승지 8곳 중의 하나로 의림지를 꼽아, 예로부터 4군(청풍, 영춘, 단양, 제천)지역의 대표적 명소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아름다운 풍광과 운치 때문에 의림지 제방과 호안 주변에는 진섭헌, 임소정(臨沼亭), 호월정(湖月亭), 청폭정(廳瀑亭), 우륵대(于勒臺) 등 많은 정자와 누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영호정(映湖亭)과 경호루(鏡湖樓)만이 남아 있다.

특히, 영호정(映湖亭)은 정미의병 창의 당시 제천을 중심으로 활약한 의병대장 이강년(李康年, 1858~1908))이 제천 천남전투에서 승리한 후 1907년 음력 7월에 이곳에서 부하 장수들과 정치를 논하였으며,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으로 추대되었으나 사양하였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영호정(映湖亭)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자는 의림지 남쪽 제방 위 노송 숲에 위치하고 있는데, 북쪽은 제방 위, 남쪽은 제방 경사지에 걸쳐 있어 8각의 높은 초석을 지형에 맞추어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동쪽 우측 칸에 `영호정(暎湖亭)'이라 쓴 현판을 걸었으며, 누마루로 오르는 계단을 설치하였다.

원래 영호정은 1807년(순조 7) 이집경(李集慶)이 건립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된 것을 그의 후손 이범우(李範雨)가 1954년에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호정(暎湖亭)'이란 정자 이름은 의림지에 정자의 그림자가 비쳐서 아름다운 경치를 이룬다는 데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영호정은 주변에 아름드리 송림이 우거지고 남쪽으로는 넓은 들판, 북쪽으로는 의림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인근에 있는 경호루와 더불어 의림지를 찾는 제천시민들의 아늑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자연 속에 녹아든 영호정(暎湖亭)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건물이 자연과 어떻게 어우러져야 하는지를 무언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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