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1
명당 1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0.02.0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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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밤나무골. 어떤 이는 밤율(栗) 골곡(谷), 율곡이라고도 부르는 이 골짜기는 이름 그대로 밤나무가 많은 구렁이었다. 내 어린 시절 뼈아픈 추억이 깃든 곳이다. 지형이 마치 삼태기처럼 생겨서 좌우 양쪽과 뒤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더없이 아늑한 곳이기도 하다. 땅을 볼 줄 아는 이들은 이곳을 명당이라고 했다.

밤나무골. 밤. 밤은 대추와 함께 결혼식 후 시부모에게 드리는 폐백 시 빠져서는 안 되는 과일이다. 신부가 대추와 밤을 드리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행위로 이 의식은 매운 시집살이를 짐작하게 해준다. 대추는 한자로 조(棗)라고 쓰고 밤은 율(栗)이다. 조와 율은 제례에도 등장하는 한자말인데 혼(婚)이 혼(昏)이라는 것처럼, 발음이 서로 교환된다. 이러면서 의미가 부여되고, 조(棗)는 조(早)이고, 율(栗)은 율(慄)이다.

대추를 드리는 며느리는 일찍 조(早)를 다짐한다. `아침 일찍 동터오기 전에 일어나서 봉양하겠습니다.'밤을 드리면서 떨릴 율(慄)을 되새긴다. `늘 두려운 마음이 들게끔 각성하고 해이해지지 않겠습니다.'좋게 새기면 시집의 일원이 되어서 며느리의 책임을 다하고, 그로 해서 집안이 번창하게 한 몸바치겠다는 굳은 결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대단한 각오다. 그러나 한편 독한 시집살이,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이라는 말처럼 인고의 세월을 예고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어머니가 던져주는 대추와 밤은 의미가 다르다. 대추는 장수를 뜻하고, 자손의 번창을 의미한다. 당연히 아들딸 많이 낳아 집안을 풍성하게 하라는 뜻이다. 특히 아들을 많이 낳으라고 하는 것이다. 밤은 한 송이에 알이 세 개 들어 있다. 그래서 아들을 낳아도 삼 형제를 낳고, 삼 형제가 모두 삼정승이 되도록 귀하게 키우라는 뜻이다.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지만 이런 축하는 무언가 저의가 있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태어난 곳은, 이곳에서 작은 동산 너머에 있다. 본래는 이곳에 마을이 있었는데 읍내에서 빤히 건너다보이므로 도둑이 많았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도둑을 피해 산 너머로 이사를 했고 집이 있던 그 자리는 밭이 되었고 더러는 묵혀져 산이 되었지만 주소는 그대로 남아 하노리로 남아 있다.

어릴 적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교에서 돌아오거나 일요일 날은 산이 된 밭을 일구느라 손이 다 부르텄다. 선친은 아무렇게나 방치된 땅을 삽과 곡괭이로 일구셨고 큰형님은 지렛대를 이용해 큰 바위를 캐내고 어머니와 나는 자갈을 어링이에 담아냈다. 그렇게 한 3년을 일군 땅이 750여 평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에 갈 때마다 아릿한 기억에 눈시울이 시려진다. 이곳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이란다. 명당. 사람으로 보면 명당은 혈로 비유되는 젖꼭지를 중심으로 한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이다. 아기가 안겨서 젖을 빨고 잠이 드는 어머니의 품이 명당이다. 역시 따뜻하고 포근한 것이 명당의 기본성격이 된다. 명당은 지기에 따라 좌우되며 땅의 형태나 구조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흔히 좌청룡, 우백호 식의 사신사구조가 명당의 조건을 특징짓는 대명사격으로 이해되고 있다. 사신사구조를 갖추었다 해도 지기가 생기로서 응결하지 못한 땅은 명당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아무튼, 이곳에만 오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은 나름 명당임이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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