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허생전
다시보는 허생전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0.02.0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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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남산골이 어느 여인네 바가지 긁는 소리로 시끌벅적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도 태연하게 웃으며 책을 읽는 이가 있었다. 허생이었다. 그리고 조금 후 책을 덮고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해 집밖을 나섰다. 그 순간 허생은 안타까움이 가족보다 세상을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서는 살림은 가난으로 찌들어 가는데 책만 읽는 허생을 보고 있으려니 화가 날만도 할 것 같았다.

저잣거리로 나온 허생은 행인에게 이 나라의 제일부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행인이 변부자라고 일러 주었다. 허생은 곧장 변부자를 찾아가 돈을 빌려 줄 것을 청하였다. 어찌어찌 돈을 빌린 허생은 그 길로 삼남을 아우르는 중심지 안성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제사용품에 쓰이는 과일을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마구 사들였다. 결국, 이 나라에 과일이 동나고 말았다. 허생은 겨우 그 정도에 그치는 것을 보고 씁쓸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하나둘씩 여기저기서 과일을 찾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왜 하필이면 제수용 과일일까? 사람들은 제수용 과일이 없으면 제사를 지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제사는 절대적인 일이었고 게다가 제수용 과일은 그것이 아니면 안 되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허생은 그 점을 노리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점을 꼬집고 싶었던 것이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어떨까 하는 의도가 있었다. 허생의 의도는 변하지 않고 고집하려는 양반사대부에게 그 이유를 던지고 있었다. 허생은 안성에서 얻은 이익금으로 곡식과 농기구를 배에 싣고 제주도로 향했다. 흉년으로 기근에 시달리던 제주는 허생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었고 그 돈으로 안성에서처럼 동이 날 때까지 말총을 사들였다.

말총은 갓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허생은 비록 돈이 쌓여도 정작 즐겁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 또한 그랬다. 갓이 없으면 어떠랴 갓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허생은 제수용 과일과 갓만을 탓하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것이 변해야 했던가. 허생은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고도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느꼈다. 그다음은 생략기로 하면서 연암은 허생을 통해 양반 사대부의 변하지 않는 모순을 풍자적이고 해학적으로 풀어가면서 그들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개혁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양반사대부였지만 장사꾼으로 뛰어들어 실리적 변화를 통해 세상을 개혁해 보려는 것이 이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어찌 보면 지금의 현실에서 보았을 때 허생은 모순적인 인물로 보일지 몰라도 그 당시의 상황으로는 대변혁을 꾀하려는 인물로 비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변화는 끊임없이 추구돼 왔다. 그럴 때마다 왜 변화가 추구되어야 하는지 변화에 대한 당위성을 그 시대에 요구하였다. 그중에서도 오류나 착각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이 뒤따랐다. 그런 비판의 일면에는 풍자와 해학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풍자와 해학은 그 가치를 발휘하며 변화의 끈을 거듭해서 이어 나갔다. 그러므로 지금도 현실 속에서 그런 표현과 방식이 비판에 의한 한 시대의 변화를 요구하는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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