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지
바람둥지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0.02.0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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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바람이 불어온다. 딸아이의 방에서 시작한 바람은 거실을 한 바퀴 돌고 내 전신을 휘감아 돌다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바람이 지나간 흔적에 나는 잠시 흔들린다. 바람은 큰딸의 원피스에서 시작될 때도 있고 아이가 쓰던 화장대에서 불어오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큰딸의 체온을 머금고 불어오는 탓에 나는 가슴앓이를 하는 중이다.

바람은 아이를 키울 때도 시시때때로 불어왔었다. 단지 바람의 시작점이 달랐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바람은 항상 아이에게서 시작되어 나를 휘감고 밀물처럼 들어왔다. 행여 내 안에 미처 갈무리 되지 못한 바람이 아이에게 부메랑이 되어 상처를 낼까 늘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며 가슴 한편에 바람둥지를 만들어야 했다.

큰딸은 아기 때부터 유난스레 낯가림이 심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 낯가림이 아이의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않았었다. 영재교육을 권유받을 만큼 영리한 큰딸이었다. 그런 아이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했고 자연스럽게 스며들지를 못하고 겉돌았다. 환경이 바뀔 때마다 적응하느라 딸아이도 많이 힘들어 보였다. 그런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 왔다. 혹시 내가 아이에게 잘못한 게 많아 그런 것은 아닌지 자책한 날도 많았다. 심지어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 태교를 잘못한 것은 아닐까? 하루하루를 꼼꼼히 돌이켜보기도 했다.

유치원 때였다. “성경아, 왜 친구들이랑 말을 안 해?”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딸은 환하게 웃으며 말을 안 해도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이후로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는 결이 다르구나, 생각했다. 집에서는 제동생과 천진난만하게 잘 놀기만 하고 해맑게 웃기도 잘하는데 대체 집 밖에서는 입을 다물고 마는지, 쭈뼛거리며 왜 어울리지를 못하는지 그런 아이의 속내가 가늠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딸에게 수만 번도 더 다른 아이들과 웃고 떠들며 평범하게 어울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 그 말을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 말과 기대가 아이를 더 힘들고 주눅이 들게 할까 대신 기도를 선택했다. 딸을 바라보면 언제나 환하게 웃어주며 안아주었다. 다행인 건 아이도 어미의 마음을 알았는지 고비 고비를 넘기며 무탈하게 자라 숙녀가 되었다. 그리고 제 반쪽을 찾아오더니 결혼을 하겠단다.

큰딸은 결혼 전부터 즐거운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노래를 하더니 정말 식이 진행되는 내내 환한 미소로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다. 너무 웃어 순간 얄밉기도 했지만 나 역시도 아이의 미소가 빛이 날 수 있도록 즐겁게 덕담을 했다. 내 덕담에 간간이 하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딸도 눈빛으로 알고 있었다. 눈물을 참으려 서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와 아이의 빈방을 들여다보다 나는 무너졌다. 온종일 잘도 참았는데……. 세 시간쯤 지났을까. 먹먹했던 가슴이 아린듯하면서도 시원했다. 아마도 서른 해를 갈무리했던 바람이 둥지를 허물고 세상 밖으로 빠져나오며 그 허전함이 눈물이 되었나 보다.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딸을 위해, 또 나를 위해 그동안 품고 있던 바람둥지의 바람을 둥지 밖으로 풀어놓으며 자유로워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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