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사회의 유행병
혐오사회의 유행병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0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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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새벽 산책길 맨 처음 만나는 신호등 불빛이 파란색인 날은 행운이다. 출근길에서 기다림 없이 신호등 불빛이 이어지는 날이라면 복권이라도 사고 싶은 징조로 여기며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산다.

정상인 상태에서는 정상이 가져다주는 행운의 크기를 실감하지 못하며, 비정상의 세상을 만나면 출근길의 신호체계를 나무라듯 남의 탓을 애써 찾아내려 한다.

마스크를 쓰고 눈을 제외한 온몸을 철저하게 가리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의 대치가 길어지면서 슬슬 뉴스가 지겹다. 뉴스는 변함없이 현상만을 다룬다. 위험요소를 사전에 파헤쳐 경고하는 보도가 특종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비정상적인 것에 대한 원인의 분석과 함께 해결 및 극복방안은 뉴스매체들에 매력적일 수 없다. 창궐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현상에 대해서도 국가나 집권세력, 또는 이웃나라의 현실적 대응 가운데 약점만을 골라 무작정 두들겨 패면서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인간에 의해 발견되지 않았던 무수한 `균'이 인간을 공격함으로써 인류가 위험에 빠지게 될 것에 대한 경고는 그동안 무수히 많았다. 다만 선각자들에 의해 제기된 경고에 인간이 각성하지 못한 탓일 뿐이다.

`다리가 달린 것은 책상 빼고 다 먹는다'거나 `날아가는 것은 비행기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의 음식문화를 다양성에 대한 찬사에서 야만이라는 혐오의 대상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인데, 그 인류 탐욕 근본성에 대해 경고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베스트셀러 <총, 균, 쇠>가 출간된 것은 1997년의 일이다.

뉴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가 박쥐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막연한 원인만을 스쳐 지나가듯 알리고 있다. <총, 균, 쇠>는 세균이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하는 과정을 동물에게서 인간에게 직접 전염되고, 그게 진화하여 사람 사이에 직접 전염하며, 인간의 질병으로 자리 잡으면서 마침내 유행병이 되는 4단계를 차분히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총, 균, 쇠>를 읽지 않았거나, 설사 읽었다 해도 경고를 까맣게 잊고 있거나 모른척하고 있을 뿐이다.

바이러스 재앙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거나 무관심, 무지보다 더 두려운 것은 세균의 전염속도보다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가짜뉴스와 허위정보이다. 위험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온종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번지는 위험에 대한 현상과 안전을 위한 격리의 명분으로 뒤덮는 뉴스는 불온하고 불안하다. 오죽하면 세계보건기구(WHO)가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현상 `정보감염증(infordemic· 인포데믹: information +epidemic)'이라는 신조어를 소개하고 있겠는가.

알고 싶은 것만 알려주는 일방통행의 정보가 만들어내는 차별과 불순한 인권유린, 그리고 혐오는 대체로 기득권에서, 그리고 잃어버린 권력을 어떻게든 빼앗고 싶은 집단에서 비롯된다. 정상과 비정상, 안전한 무리와 위험한 집단 등으로 인간세상을 분류하고 배제하며, 혐오를 통해 차별을 만들어낸다.

카롤린 엠케는 <혐오사회.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는가>를 통해 “자신들의 집단이나 이데올로기를 더 우월한 것으로 묘사하고 `우리'와 `타자들'을 구분하는 또 하나의 전략은 `순수성'을 주장하는 이야기에 담겨 있다”면서 이른바 `오염되지 않았다'는 암호화된 주장을 우려한다. 진천도 그랬으며, 아산 역시 처음에는 동질성과 본연성, 그리고 차별성을 내세우는 반발이 있었으니, 이는 결국 기득권을 통해 나타난 혐오의 다른 이름이고, 포용을 통한 극복은 또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공기 중의 위험에 전전긍긍하며 우리는 마스크의 일상을 살고 있다. 자연과 환경을 온통 기득권에게 빼앗긴 기후 위기의 시대, 마스크가 그저 침묵이고 무표정이며, 위기탈출의 신호가 될 것인가. 레이첼 카슨이 살충제를 걱정하며 인류에게 경고한 <침묵의 봄>은 1962년에 처음 발간됐고, 우리는 58년 동안 봄마다 의미 없이<立春大吉 建陽多慶>을 내걸고 있다. 온몸을 비닐로 뒤집어쓴 인류에게 거칠 것 없이 뿌려지는 소독약. 우리는 어떤 역병과 싸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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