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롱잔치
재롱잔치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20.02.03 1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햇병아리 여교사가 제자들과 함께 찍은 흑백 사진 속에 웃고 서 있다. 머리 모양도, 입은 옷도 촌스러워 보인다. 다만 앳되고 풋풋해 보인다. 교단에 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설프기만 했던 스물다섯의 내 모습이다.

50여 년 전 가르친 제자들이 교육청에서 주최한 독서대회에 우승을 차지하여 우승기를 타오던 날이었을 게다. 제자들이 우승기를 세워놓고 함께 찍은 졸업 앨범의 흑백 사진을 뽑아 확대하여 예쁜 액자에 넣어 선물로 가져왔다. 사진을 한동안 들여다보며 보며 그 옛날 순수했던 제자들의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제자들과의 해후는 어느 날 문학 모임에서였다. 모임의 내빈으로 참석한 한 제자는 수소문 끝에 지인을 통해 내가 참석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왔노라 했다. 누군가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며 그에게 안내했을 때 나는 낯선 사람이라 의아스러웠다. 50여 년 전에 가르쳤던 제자라는 사실을 알고서야 옛날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너무도 반가워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축사하는 시간에 나의 제자임을 알려 그곳에 모인 사람들로부터 나는 박수를 받고 흐뭇했다.

그 후로 그는 제자들과의 모임을 주선하여 50여 년 전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이야기꽃을 피웠다. 모두 훌륭하게 성장하여 그들을 보는 나는 든든하고 흐뭇했다.

며칠 전에는 청주 밖 타지에 있는 제자들에게도 연락하여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며 옛 추억에 젖었다. 어느새 그들은 내년에 환갑을 앞두고 있어 제자라기보다는 동생 같은 느낌으로 그들과 어울렸다.

저녁 식사 후 선생님을 위한 재롱잔치를 하겠다며 노래방으로 몰려 가 흥겨운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며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평소 노래방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나는 그들과 어울려 손잡고 노래도 부르고 탬버린도 치며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제자들의 재롱잔치는 그들을 초등학생의 모습으로 돌려놓았고, 그들을 지켜보는 나는 수줍음 많던 햇병아리 선생님이었다.

42년간 교직 생활을 하다 보니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제자들이 여러 명 있다. 제자들과의 만남은 내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교직 생활의 큰 보람이다.

며칠 전 손자의 졸업식에 다녀왔다. 졸업식장은 축제의 분위기였다. 아이들의 표정은 밝아 50여 년 전 졸업식장에서 훌쩍이던 제자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잘 꾸며진 실내의 졸업식장에서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공연과 제작한 영상에 따라 진행되는 졸업식을 보며 그 옛날 추위에 떨며 질척거리는 운동장에서 졸업식을 하던 모습에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졌다.

시대의 변화로 교육제도와 교육환경이 바뀌고 이에 따라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지나친 학력 위주의 교육제도로 학교 현장도 옛날과 많이 다르다고 한다. 문화의 혜택과 지식의 폭발로 지적 수준이 높아지고, 경쟁이 심한 사회적 구조는 점점 사람을 자기중심적으로 몰고 가는 것 같다. 가끔 학교 현장에서 갈등을 겪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교사와 학생 간에 정情이 메말라가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나는 한 해 동안 고생하신 손자의 담임선생님께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손자에게는 훗날에도 선생님의 고마움을 잊지 말라고 일렀다.

졸업식이 한창인 요즈음 제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사제지정師弟之情을 생각한다.

어느새 교단을 떠난 지 10년이 되어가는 지금, 제자들의 깜찍한 재롱잔치는 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살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