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무슨 일이
그녀에게 무슨 일이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20.02.0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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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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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충북대학교 도서관에서는 ‘책으로 만드는 세상’프로그램이 있었다. 세 팀이 참여하여 정해진 기간에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독서모임을 한시적으로 열었다. 나는 각 팀의 모임이 원활히 소통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토론 논제를 뽑아 진행하는 일을 맡았다. 팀원은 자기 팀이 선정한 책 4권을 읽으면 되지만 나는 6주 동안 12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엔 거실에 불을 켜놓고 잤다. 눈만 뜨면 책을 읽고 논제거리를 찾아 밑줄을 그었다. 이런 전투적인 책 읽기가 좋았다. 무리해서 뭔가 하지 않으면 사실 우리 일상은 거의 변화 없이 흐르는 물처럼 흘러간다. 각 팀원이 선정한 책을 읽으며 독서 편식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관심 없는 분야의 책은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그 시절도 끝나고 추억하는 시간이 된 지금, 책꽂이를 뒤지다 발견한 그림책이 있다. 제목도 선명한 『도서관』이다. 데이비드 스몰이 그림을 그리고 사라 스튜어트가 글을 썼다. 이들은 부부 작가이며 7권의 그림책을 함께 펴내기도 했다.
뭔가 흥미를 끌거나 독자를 사로잡을 만한 위기가 찾아오는 그런 줄거리는 없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브라운이라는 인물의 정물화 같은 생을 훑어준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한 것이 책이다. 엘리자베스는 인형 놀이나 스케이트 타는 것보다 책 읽기를 더 좋아했다. 기숙사를 들어가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그녀의 짐은 거의 책이었다. 심지어 친구들의 도서 대출증으로 책을 빌려다 읽을 만큼 그녀의 책 읽기는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어느 날, 기차를 타고 나갔다가 길을 잃은 엘리자베스는 하는 수 없어 그곳에 살 집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았다. 그런 융통성 없는 삶의 위기 순간에도 그녀는 책을 따라갔고 책과 늘 함께했다. 자, 이쯤 되면 그녀의 이후의 삶도 예측 가능할 것이다. 읽고, 읽고 또 읽던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집이 온통 책으로 둘러싸여 드디어 현관문을 막아 버리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러자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모든 재산과 책을 기꺼이 기부하고 친구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친구와 늙어서까지 행복하게 책을 읽으며 살았다는 이야기다. 엘리자베스가 기부한 자신의 집은 ‘엘리자베스 브라운 도서관’으로 새롭게 재생된다.
지난해부터 읽고 싶은 책이 있었는데 도서관에 갈 때마다 대출되어 대출 예약을 하고 황망히 다른 책을 건져 오곤 했다. 요즘 도서관을 드나들며 이곳이 신성한 곳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세상에 몇 안 되는 평등한 공간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도서관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돈이 많다고, 지역 유지라고, 어떤 자격증으로 대출증을 더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대출 카드도, 점유 좌석도 오직 하나다. 상석도 없다. 그저 어르신 자리가 몇 자리 배려되어 있다. 어떤 이는 인류의 지적 자산을 사유하지 않고 공유한다는 점에서 도서관은 가장 사회주의적인 산물이라 말한다. 재미없었을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집을 도서관으로 개방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작은 평등’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잘하고 사는 것만큼 의미 있는 생은 없을 것이다. 무럭무럭 자라는 독서가 삶을 움켜쥐는 악력 운동이며 소진한 에너지를 수면으로 회복하라는 자본주의와 생물적 나이에 대한 반항이고 감성의 초월적 자기 활동이다. 오랜만에 가슴 벅찬 고백으로 다시 책을 끌어와 내 손의 온기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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