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과 우한 폐렴
인간 본성과 우한 폐렴
  •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 승인 2020.01.30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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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우한 폐렴으로 심란한 요즘, 2015년 6월의 악몽이 떠올려진다. 부친이 서울 삼성의료원에 지병으로 입원했던 시기에 그 병원 응급실을 통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대량 확산되었다. 지병이 치료돼 고향에 내려가서 편안히 지내시던 부모님에게 보건소 직원, 경찰 등이 찾아와 2주간 집 밖을 나가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후 5가구에 노인들만 사는 산골 인심이 흉흉해지기 시작했으며 면 단위 고향 지역사회는 온갖 `~카더라 뉴스'가 난무했다. 80세가 넘은 노부부는 영문도 모른 채 2주간을 지내야 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위험사회'란 저서를 통해 서구를 중심으로 추구해온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이 실제로는 가공스러운 `위험사회(risk society)'를 낳는다고 경고함으로써 위험을 현대사회를 읽는 키워드로 만들었다. 울리히 벡이 이야기하는 위험은 `눈앞의 위험'보다는 `직접 감지되지 않는 위험'이다. 직접 감지되지 않는 것은 예측하기 어렵고 해결 또한 어렵다. 그래서 이 위험은 불안감과 공포를 가져온다.

오늘날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기후변화, 미세먼지, 전염병과 같은 위험은 특정 국가, 특정 민족이 극복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범지구적 재앙이 됐다. 계급사회의 동력이 “나는 배고프다 빵을 달라”에서 시작됐다면 위험사회에서는 “나는 불안하다”에서 시작된다. 울리히 벡은 이런 사회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미세먼지, 기후변화, 전염병)는 민주적이다'

이 위험은 기존의 계급 및 국가 간 경계를 허문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전염병 등은 국경을 무시하며 노동자와 자본가를 구별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구 상 그 누구도 안전한 장소에서 살기 어렵다. 우한 폐렴은 비록 중국의 한 도시에서 생겨났지만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됐으며 누구도 그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현대문명이 퇴보하지 않는 한 위험사회는 더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도 만만치는 않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자신에게 친숙하지 않은 상황이더라도 적응하고 살아간다. 이사 간 처음에는 낯선 사람, 장소에 긴장하지만 조금씩 사람과 주변 지리를 알아가고 그곳에 동화되어 간다. 낯설음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는 것이다. 위험 특히 질병에 대해서도 생물학적인 면역력이 생기면서 극복해 나간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의 `가용성'이 제한돼 있을 때 실제 확률적 가능성보다는 어떤 사건의 치사율, 인터넷 등을 통한 극적인 공포자극 등이 훨씬 더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 가용성 오류(availability error)라고 한다. 비행기 추락사고, 살인과 같은 죽음의 위험을 시스템적으로 과대평가하고, 당뇨병이나 위암같이 덜 주목받는 죽음의 위험은 과소평가한다. 그러나 비행기 추락이나 폭탄 테러에 의한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드물게 일어나며 암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죽음은 훨씬 많이 발생한다. 통계적으로 보면 메르스나 우한 폐렴 등과 같은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극히 제한적이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선제적 대응은 당연히 과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중국에서처럼 우한지역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고 못 들어오게 하거나 터널을 중장비를 동원해 흙으로 막아 옆 동네 사람을 막는 행위는 전염병보다 인간 본성이 더 무서움을 보여준다. `위험사회'에서는 질병에 대한 개인의 면역력도 중요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사회적 면역력이 아닐까.

2015년 6월, 삼성의료원에 입원했었다는 이유만으로 2주간 격리된 후 정상 생활로 돌아갔지만 노부부가 받은 상처는 주변인의 싸늘한, 두려운, 공포스런 눈빛으로부터였다.

지금의 위험 상황에서 가용성 오류를 조심하면서 국민적 대처요령인 손 잘 씻기, 마스크 하기, 기침 예절 등을 철저히 지켜 차분히 일상생활을 해나가면 좋겠다. 자의든 타의든 격리되거나 입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고 쾌유를 기원해 주면 좋겠다. 우리는 결국 `우한 폐렴'을 이겨낼 것이다. 그것도 인간 본성을 지켜내며 이겨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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