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01.2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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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너무나 명확하고 확실해서 더 이상의 의심이나 질문이 없는 걸 우리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있을까? 세상에 의심이나 의문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을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곧 모든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있으며 의심할 수 없는 건 없다.

길을 걷는다. 걷거나 뛸 때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내딛는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생각이 없는 건 내디딘 발을 땅이나 바닥이 받쳐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이다. 우리는 발을 내디딜 때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디딘 발을 땅이 받쳐주는 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이게 당연한 것일까? 우리는 계단을 내려갈 때 계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발을 디딘다. 그런데 계단이 없어서 발을 헛디딜 때가 있다. 그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렇게 발을 내디딜 때 땅이나 계단이 발을 받쳐줄 것이라는 믿음은 가끔 깨진다. 이런 경험을 해보면 내가 걸을 때 땅을 받쳐줄 거라는 믿음은 당연하지 않다.

나는 사람들하고 대화한다. 대화를 한다는 건 상대가 내 앞에 있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내 앞에 사람, 차, 건물, 도로, 은행, 핸드폰이 있다. 그런 것들이 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내 앞에 대상이 있다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그걸 의심하는 사람은 정신병자로 오인받기 십상이다.

그런데 정말 당연한 것일까? 내 앞에 사람이나 자동차와 같은 대상이 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해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을까? 그게 과연 100% 확실한 것일까? 어제 꿈에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다. 너무나 생생해서 지금도 그 대화내용을 기억할 정도이다. 잠에서 깨어보니 꿈이었다. 대화를 하는 동안 나는 아버지가 내 앞에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꿈이라니? 나는 나와 대화를 하는 사람이 지금 내 앞에 있다는 걸 확신한다. 지금 이게 꿈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을까? 꿈에서의 생생한 느낌이 허구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생생함도 허구가 아니라는 보장이 있을까? 보장할 수 없다. 이걸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도 당연한 건 아니다.

생명만큼 절대적인 게 있을까? 태어난 이상 모두가 악착같이 살고자 한다. 목숨 부지하는 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굶어 죽을 것 같아서 빵을 훔치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껴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용인하는 편이다. 태어난 자가 생명을 우선시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가미가제 특공대도 있고, 자살폭탄 테러도 있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하는 경우도 있다. 삶이 절대적이라면 그런 경우는 있어서는 안 된다. 삶이 절대적으로 당연한 건 아닌 듯하다.

사람은 죽는다. 죽는 것은 당연할까? 태어난 자가 죽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게 당연하냐고 묻는 것은 불필요한 질문이다. 죽음은 당연한 사건일까? 그런데 `왜 죽을까?'를 고민한 사람들이 있다. 기독교에서 죽는 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죄로부터 벗어나면? 안 죽는다. 영생을 얻는다. 죽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면 죽는 이유를 물어보지 않는다. 죽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유를 물어봤고 그에 대한 답을 찾은 것이다. 부처도 묻는다. 왜 죽지? 답한다. 태어났으니까 죽지. 안 죽으려면 안 태어나면 된다. 안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그다음 문제이고 어쨌든 죽는 사건에 대해 `왜?'라고 물어본 것이다. 그걸 물었다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죽는 것도 당연한 건 아니다.

당연한 게 없으면 어떻게 살지? 글쎄? 완전히 깨지면 살길(活句)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충북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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