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로 머물러
낮달로 머물러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0.01.2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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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집이 적막강산이다. 꽉 차서 좁아보이던 집안이 휑하다. 아들은 봄기운을 몰고 와 머물고 갔다. 이틀 동안의 기운이 가족 사이에도 온기로 훈훈하다. 막 서른을 넘긴 아들이지만 내 눈길은 오롯이 그에게 붙박이다. 아직 미래가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고 있기에 더 그렇다.

취직을 하고 결혼할 나이다. 언제 길이 보일지도 모르는, 어디서 내려놓을지도 모르는 짐을 지고가고 있다. 그래도 그 등짐이 버겁다고 투정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는 약한 소리를 한 적도 없다. 나약함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아들을 알기에 안쓰럽다. 엄마로서 도와 줄 일이 없어져 손을 놔버리니 마음만 자꾸 더 불어난다.

노심초사하는 어미의 마음을 자주 숨겨야하는 나는 넙치를 떠올린다. 넙치는 바다의 카멜레온으로 불린다. 모래와 바위가 있으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기가 어려울 만큼 잘 숨는다. 또 눈의 위치가 바뀌는 신기한 변화를 일으킨다. 알에서 깨어난 직후에는 두 눈이 양쪽에 따로따로 있다. 차차 자라면서 오른쪽 눈이 왼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저속생활에 들어가면 두 눈이 왼쪽에 나란히 위치하는 변태과정을 거친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살기위한 적응변화인 셈이다.

아들을 향한 관심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온전히 자신에게 향해있는 걸 알면 부담감이 클 것 같아서다. 잘 하는지 걱정하는 마음도 숨기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감춘다. 그저 들킬까봐 앞날에 대한 근심을 반가운 표정으로 덮어버린다. 커 갈수록 나의 심안은 한 곳으로 몰린다. 아들에게 쏠리는 마음이 한 쪽으로 몰린 눈을 한 넙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찌 자신도 불안하지 않으랴. 공부는 나와 있는 답이 없으니 답답하리라. 더군다나 물리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과목이다. 제가 선택한 길이니 불만을 내뱉지도 못할 터이다. 부모가 말을 안 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거는 기대감을 모를 리가 없다.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긴 과정을 은근히 미안해 하는 눈치다.

출근길, 올려다본 하늘에 선명한 낮달을 보았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 건너에서는 해가 눈이 부시게 빛을 내뿜고 있다. 괜스레 알알해지는 이 기분은 무얼까. 어떤 기억 한 조각이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듯 보이는 건 달이 마음으로 헤아려져서인지도 모른다.

어둔 밤을 밝히다 깜빡 잠이 들어 환한 아침이 와 있는지 모르고 있었을까. 어둠이 미더워 떠나지 못했을까. 지난밤의 기억을 지우지 못해 남아 오래토록 되새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떨어지기 아쉬운 연인들의 어둠길을 밤새 밝혀주느라 피곤하여 졸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화에는 옥황궁의 선비와 땅에 살던 처녀의 사랑이 전해진다. 둘의 사이가 너무 좋아 한시도 떨어지지 못하는 사이여서 같이 다녔다. 이를 본 옥황상제가 맺어질 수 없는 둘을 밤과 낮으로 갈라놓았다고 한다. 가끔 낮달이 보이는 건 둘이 몰래 만나는 모습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아릿하다.

사실 달은 하루 종일 하늘에 떠 있다. 낮에는 태양빛이 너무 강해 가려져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다 눈에 띄는 시간은 해가 막 떠오르는 아침이나 지는 저녁에 태양빛이 약해질 때다. 오늘은 그 틈을 타 애처로운 사랑을 담은 낮달로 강렬한 해를 밀치고 모습을 드러냈는가 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언제나 한 곳에 떠 있는 달이 있다. 넙치를 닮은 수수한 스톨게적 사랑을 품은 반달. 거기에 나는 낮달로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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