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조청 만드는데 왜 엿기름이 들어가나?
무 조청 만드는데 왜 엿기름이 들어가나?
  • 우래제 전 중등교사
  • 승인 2020.01.2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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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리 집 김장은 늘 꼴찌로 한다. 무, 배추가 서리를 몇 번 맞아 얼었다 녹았다 해야 맛이 좋다는 우리 식구의 믿음이 강해서다. 우리 어머님은 얼지 않도록 무, 배추를 덮는데 우리 식구는 적당히 얼었다 녹아야 한다고 벗기기 바쁘다. 날씨가 따뜻한 어느 날, 무를 뽑으러 갔더니 무가 다 얼어 버렸다. 버리긴 아깝고. 일부러 서리 세 번 이상 맞은 무로 조청을 만든다는데 무 조청을 만들기로 했다.

도라지 한 줌 캐서 대충 썬 무와 같이 가마솥에 넣고 끓였다. 적당히 식은 다음 엿기름을 물에 타서 붓는다. 그런데 왜 엿기름을 넣어야 조청이 되지?

엿기름은 보리싹을 틔워 말린 다음 가루로 만든 것을 말한다. 이름과 달리 기름이 아니다. 여러 곡물을 사용하여 만들 수 있지만 보통 보리를 사용하여 만든다. 그래서 보리 맥(麥) 을 써서 맥아(麥芽)라고 한다. 녹말을 함유한 곡물은 싹 틀 때 아밀라아제라는 효소가 증가한다. 이는 씨앗에 포함된 녹말을 분해해서 싹이 터서 자라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아밀라아제는 사람의 침에도 포함된 소화효소로 녹말을 엿당(맥아당 maltose)으로 바꾸는 작용을 한다. 엿기름은 바로 이 아밀라아제라는 효소를 얻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쌀을 삭혀 만드는 식혜, 보리로 만드는 맥주, 호밀로 만드는 위스키도 엿기름이 사용된다. 쌀이나 술을 만드는 곡물은 에탄올을 만드는 효모가 직접 분해를 할 수 없다. 그러기에 엿기름을 넣어주면 엿기름에 포함된 아밀라아제가 곡물의 녹말을 분해하여 이당류인 엿당을 만들어 준다. 이 엿당을 효모가 발효시켜 에탄올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무 조청을 만들 때 엿기름을 넣는 이유는 무엇일까?

술을 만들 때 엿기름을 넣는 이유와 같은 원리라고 볼 수 있다. 조청의 주원료가 되는 쌀, 고구마, 감자, 수수 등은 많은 녹말을 갖고 있다. 이 녹말을 분해해서 엿당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밀라아제를 많이 포함한 엿기름이다. 다음으로 무, 도라지, 양파, 생강, 호박 등은 부재료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주·부 재료를 엿기름에 섞어 아밀라아제의 분해로 만들어진 엿당을 농축시킨 것이 조청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청은 옥수수나 여러 전분을 화학적인 방법으로 이당류를 만든 물엿과 비슷하지만 맛과 향이 다르다. 99% 당류인 물엿은 투명하고 향기도 없지만 여러 가지 섬유질과 다른 성분이 포함된 조청은 갈색을 띠며 부재료에 따라 향과 감칠맛이 제각각 다르다.

누가 엿기름에 녹말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조상의 생활 지혜는 경험에서 얻어졌을 것이다. 아차! 무 조청 만들면서 주재료인 쌀을 조금밖에 넣지 않았네. 어쩐지 한 가마솥 다 다려도 꿀 병 하나 채울 정도도 되지 않겠다. 무 조청이라고 무만 넣는 것은 비효율적인 노동인 것을. 결국 거의 순수한 무 조청을 먹게 생겼다. 내친김에 들깨강정을 만들어 볼까? 누가 떡이라도 가져온다면 기꺼이 무 조청 한 그릇 내놓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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