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없는 집
지붕 없는 집
  • 박사윤 한국어강사
  • 승인 2020.01.28 2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박사윤 한국어강사
박사윤 한국어강사

 

빨래를 넌다. 이틀이 멀다 하고 반복되는 일이다. 빨래를 널고 제습기의 버튼을 누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일상으로 바뀌었다.

10년 전 이 집은 옥상이 있는 양옥집이었다. 아파트에서 살다가 이사 와서 가장 좋았던 것 중의 하나가 옥상이 있어서였다.

어린 시절 대부분 집은 기와집이었다. 그러나 마을에 한두 집의 양옥집이 있었다. 양옥집 앞을 지나노라면 모양이 깔끔하여 보기도 좋았지만, 옥상이 있는 게 너무 부러웠다. 양옥집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옥상이 아지트였다. 옥상에 있는 커다란 평마루에서 소꿉놀이도 하고 밤에는 누워 별을 세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잘 사는 집의 표상이었던 양옥집의 특징은 지붕이 없는 것이다. 옥상에는 볕이 좋아서 이것저것 말리기도 좋다. 빨래도 한 두 시간이면 뽀송뽀송하게 마른다. 그래서 지붕 없는 집에 살게 된 나는 빨래를 널러 옥상 가는 것이 즐거웠다.

가끔은 친구들이 놀러 와서 고기도 구워먹는 등 옥상의 활용도는 매우 높았다. 그러나 겨울이 되자 눈이 많이 쌓이면 치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녹을 때까지 두었더니 날이 풀리면 천장에서 물이 새서 벽에 곰팡이가 생기는 게 아닌가? 결로(結)현상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옥상에 쌓여 있는 눈이 원인이란다. 그 이후 옥상에 방수공사를 해서 한 해를 넘겼으나 해결책은 아니었다. 이사 온 지 몇 해 만에 우리는 결국 지붕을 씌우기로 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지붕을 씌운 후 천장에서 물이 새거나 결로현상도 없어졌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지냈다. 주변에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붕 없는 집이 점점 사라진다.

10여 년 전 홍콩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홍콩은 인구밀도가 높다. 좁은 집에서 여러 가족이 살다 보니 집안에서 밥을 해 먹지 않고 빨래도 빨래방에서 해 온단다. 그 당시는 믿겨지지 않는 일이었다. 밥은 사 먹는 게 싸고 빨래는 집에서 해도 널 곳이 없단다. 혹여 베란다 창문 밖에 널게 되면 하얀색 옷이 매연에 까맣게 변해서 입을 수가 없다고 했다. 홍콩의 여자들은 집안일을 안 한다는 말에 마냥 부러웠다.

그러한 일이 지금 내가 있는 한국에서도 당연하게 되었다. 마당이나 옥상에 하얀 기저귀를 널며 흐뭇해했다는 말은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믿기 힘든 일이다.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빨래를 밖에서 너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또한 빨래를 집 안에 널려면 집안이 습해지기 때문에 제습기는 기본이다. 그러다 보니 세탁기 자체에서 건조까지 되는 기능의 세탁기가 접점 다양해지고 있다. 공기청정기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우리의 생활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모든 것을 집안에서 해결하는 장점이 있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밖이라는 공간을 믿을 수 없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집이 점점 외부로부터 차단하는 구조로 되어가고 있음에 안타깝다. 지붕 없는 집에 대한 로망은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된 것 같다.

요즘 우한폐렴으로 인해 전 세계가 비상이다. 확산을 막으려는 마음에 나라와 나라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금을 긋고 사람들은 서로를 불신하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다. 이 모두가 자연이 준 선물을 잘 관리하지 못한 데서 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면 할수록 앞으로 더 크나큰 재앙이 몰려올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 건강수칙을 잘 지켜 질병이 와도 이겨낼 수 있도록 몸을 잘 관리하는 게 최선책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