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과 갈등이 감성과 공존으로! 청주 정북동토성
분열과 갈등이 감성과 공존으로! 청주 정북동토성
  •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 승인 2020.01.27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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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인류가 성을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원시적인 방어시설이 설치된 것은 수만 년 전 인간이 동굴이나 움집에서 생활할 때 주변에 나무나 돌로 울타리를 만들면서부터라고 생각이 된다. 현재 고고학적 발굴에서 가장 오래된 성곽으로 밝혀진 성곽도시는 BC 8000경에 만들어진 성경에도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여리고(예리코)성 이다.

성곽은 처음에 토성에서 시작한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설명한다. 우리나라 토성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토성이 서울의 몽촌토성이다. 서울 한강변에 올림픽공원으로 조성돼 시민의 휴식 공간이 되어 있다. 이 성곽은 야산의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만든 초기 백제시대의 중요한 성곽 가운데 하나이다. 사적 제297호로 지정된 몽촌토성은 일반적으로 토성이라 부르지만 사실 순수한 토성은 아니다. 자연 언덕을 이용해 언덕이 낮거나 끊긴 부분에만 이른바 판축 기법을 이용해 점토를 쌓아서 만든 산성이자 토성이다. 성벽의 바깥쪽은 경사면을 깎고 다듬어서 급경사를 만들고 그 경사면에 목책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성벽 밖으로는 방어용 물길인 해자를 두른 전형적인 성곽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몽촌토성 못지않은 토성이 청주에도 있다. 바로 정북동토성이다. 청주시 북쪽 미호천변 평야의 중심에 위치한 평지 토성인데 정확한 축조 연대를 알 수 없으나, 평지에 축조된 방형 토성이라는 사실과 최근 발굴조사 결과 출토된 유물로 보아 청동기 말기나 원삼국시대인 2~3세기경에 최초의 축성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평지에 정사각형에 가깝게 조성된 가장 형태가 잘 보존된 성곽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영조 20년(1744)에 상당산성의 승장으로 있던 영휴가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후삼국시대 후고구려의 궁예가 상당산성을 차지하고 있을 때 후백제의 견훤이 이곳 작강(鵲江) 즉 까치내 옆에 정북동 토성을 쌓고 창고를 지어 서로 대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이곳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임을 알게 한다.

토성의 모양은 남북으로 약간 길쭉한 형태이며 성벽의 높이는 3.5m~5.5m, 성벽의 윗부분 폭은 2m, 성벽의 밑 부분은 11.9m 이상이다. 성벽의 둘레는 675m이다. 이 토성은 1990년 12월 14일 도지정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되어 관리되어 오다가 중요성이 인정되어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성벽은 4곳 모서리 부분은 약간 높고 바깥으로 돌출되어 치성 또는 각루의 시설이 있었던 듯하다. 4면 성벽의 중간쯤에는 문지로 보이는 절단부가 있으며, 이들 가운데 동·서·북의 것은 지금도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남문지와 북문지는 좌우의 성벽이 엇갈리게 축조된 독특한 형태로서 옹성의 초기 형식으로 주목된다.

최근에 정북동토성이 전국의 사진작가들 사이에 주목을 받고 있다. 소위 인생 사진 촬영 장소로 유명해 진 것이다. 토성 위에 소나무 몇 그루가 있는데, 소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의 장면이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갈등과 분열의 장소가 이제는 감성과 느낌이 살아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 조상의 숨결이 남아 있는 오래된 토성 위에서 인생 사진을 찍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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