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대목장에서
설 대목장에서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0.01.27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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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설 명절을 며칠 앞두고 재래시장에 갔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손꼽아 기다려도 더디게만 오던 명절이 요즘에는 반기지 않아도 성큼성큼 다가 오는듯하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 세대에 비하면 일이 많다 할 수 없지만, 주부들에게 명절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마침 인근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 서둘러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이른 시각이지만 대목장날이라 이미 시장은 붐비고 있었다. 생선좌판도 평소장날보다 몇 군데 더 늘었고 물건도 수북수북 많이 쌓여있었다. 차례상에 올릴 조기, 동태 포, 오징어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생선들도 불티나게 잘 팔려 나갔다. 싱싱하고 좋은 생선을 올리려고 주부들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나도 그 틈새에서 반짝이며 생선들과 눈을 맞췄다.
트럭에 과일을 싣고 온 아저씨도 매우 바빴다. 요즘은 외국에서 새로운 과일들이 수입되어 손쉽게 우리입맛에 길들여지고, 비닐하우스 재배 또는 저장시설로 딸기나 포도 등 여름과일들도 철을 잊을 만큼 마트에 많이 있다. 명절 대목장에서는 차례상에 빼놓을 수 없는 과일인 사과, 배, 감, 대추, 곶감은 으뜸으로 주부들 장바구니에 담겨 귀한 대접을 받는다.
강정을 파는 좌판, 어묵을 튀기는 곳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잠시도 상인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점점 높아졌다. 어느새 시장은 북새통이 되었다. 조금씩만 산다고 해도 이미 장바구니는 묵직해졌다. 인파에 밀리며 간신히 복잡한 시장 통을 조금 벗어났다.
시장입구 길목에 정겨운 물품들이 줄지어있었다. 채반, 주걱, 나무도마, 빗자루 등 옛 생활용품들이다. 싸리나무 채반, 예전에 아버지께서 손수 만들어 주시면 할머니와 어머니는 명절에 채반가득 부침개나 전을 담아놓으셨고 평소에는 호박, 무말랭이, 나물 등을 말릴 때도 자주 쓰시던 물건이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다가가 채반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만져보았다. 살까말까 생각하다 일 년에 한두 번 쓰고 보관하기도 마땅치 않아 아쉽지만 놓고 왔다.
팔순은 넘어 보이시는 할머니들도 시장 끝에 난전을 펼쳐놓으셨다. 고추장아찌, 삭힌 깻잎, 무 몇 개, 배추 몇 포기를 펼쳐놓았다. 보행 보조차에 의지해 물건을 가지고 나오신 듯해 마음이 짠하다. 그 옆에 할머니는 콩나물시루를 앞에 두고 손님을 기다리고 계셨다. 불현 듯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다. 친정어머니도 한때 콩나물을 길러 시장에 내다 팔곤 하셨다. 콩나물을 먹기 좋게 기르려면 거의 일주일 정도는 시간이 걸린다. 밤낮없이 자주 물을 주고 밤에 자다가도 한두 번은 물을 줘야 콩나물에 잔뿌리가 많이 나지 않고 연하게 잘 자란다. 할머니는 콩나물을 봉지에 두어 번 덤으로 더 집어넣으셨다. 그만 됐다고 손 사레를 쳐도 부득이 더 넣어주셨다.
명절이 다가오자 마음이 허해 졌었나보다. 맏며느리로 명절 음식 장만하느라 힘들어도 명절 쇠고 친정에 가서 부모님 얼굴 뵙고, 각지에 흩어져 살던 동생들 만나 하룻밤 지내고 오면 힘든 명절 후유증도 없어졌었다. 이제 부모님 모두 먼 곳으로 가셨으니 명절을 쇠고 나면 갈 친정이 없어 헛헛한 마음이었다.
명절 때면 늘 사들고 오는 식재료 들이지만, 설 대목장에서 들고 온 바구니엔 유년의 그리움, 잊혀져가는 한줌의 정 그런 소중한 것들이 있어 훈훈한 마음이 여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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