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만이라도 함께 … 그래야 가족이지요”
“명절만이라도 함께 … 그래야 가족이지요”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0.01.22 1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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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代가 설 보내는 조성구.윤순임 어른신댁을 가다
7남매에 증손자만 11명 … 보통 30~40여명 모여
마당서 족구 - 투호·윷놀이 하며 한바탕 웃음잔치
“부모가 잘해야 아이들 보고 배워 … 가족간 화목”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에게 세배하는 것으로 새해 첫날을 맞이했다. 덕담을 주고받으며 한 해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던 설. 하지만 핵가족이 시대가 되면서 정을 나누는 대가족 문화도 사라진 지 오래다.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며 타지로 떠난 자식을 기다리는 고향 풍경도 찾아보기 어렵다. 부모 자식도 만나기 어려운 요즘 4대가 명절을 보내는 조성구(93)·윤순임(91) 어르신 댁을 찾아 설을 준비하는 마음을 담았다.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상발리 조성구·윤순임 부부. 구순을 넘긴 두 부부가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고향에 뿌리내린 지도 70년이 넘었다. 슬하에 7남매를 두고 손자에 증손자까지 50여 명에 이르는 가계를 이루면서 명절은 작은 가족 축제다. 조용하던 시골 마당도 들썩이는 날이 명절이다.

설을 코앞에 두고 조성구 어르신이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은 세뱃돈이다.

어르신이 직접 붓글씨로 쓴 세뱃돈 봉투는 어림짐작으로 30여 장. 동현 엄마, 경현 엄마, 현이, 서현이 등등 며느리, 손자, 증손자까지 정갈하게 이름을 써서 준비해두었다.

“명절 때 안 오면 나한테 괘씸죄에 걸려요. 허허. 명절만이라도 같이 모여서 음식도 해먹고 놀이도 하면서 가족이 화목을 다질 수 있도록 합니다. 7남매를 뒀고, 증손자만도 11명이니까 대가족이죠. 명절이면 보통 30~40명이 모입니다.”

이처럼 명절이면 4대가 상발리 고향집 마당에서 만난다. 갓난아기부터 90대까지 연령도 다양하지만 가족이란 이름은 언제나 하나가 되는 시간이다. 왁자해진 마당에서 족구대회도 열리고, 윷놀이, 투호 놀이도 하면서 한바탕 웃음잔치가 벌어진다.

“정이 많은 것은 대물림인 것 같아요. 대가족을 좋아하셨던 할아버지의 영향이 큽니다. 핵가족 시대가 되면서 명절은 이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되었어요. 그래서 명절이 더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요즘은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도 많은데 조상을 귀찮게 생각하면 안 돼요. 가족의 화합을 위해서도 차례는 정성으로 지내야 합니다.”

정이 많은 집안이라지만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4대가 고향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가족들이 고향을 찾는 데는 어르신의 역할도 크다. 그 많은 가족들 생일을 적어두었다가 축하 전화를 건네고, 먼저 베풀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가족 화합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부모가 첫째 잘해야 한다고 봅니다. 내가 실천하면서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배우거든요. 가훈이라고 따로 있지 않아요. 가족 간에 화목과 우애를 돈독히 하는 것이 생활 속에, 몸에 배어 있어요. 작은 것부터 챙겨주는 것도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골에서의 단순한 생활이지만 배우고 노력하는 일에 게으름이 없다. 책을 읽고 신문을 보고 비망록에 좋은 글귀나 마음의 글을 쓰는 것이 어르신의 일과다. 요즘 어른이 없다고 하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참 어른의 모습이다.

“어른이 없다고들 하지만 어른들의 가정교육이 철저하지 못해서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하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남과 경쟁하는 사회이다 보니 현대인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건강의 비결인 것 같아요. 행동은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배우고, 행복과 즐거움은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배우라는 말이 있듯이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때 마음도 즐거워집니다.”

매년 새해를 맞이하지만, 올해 설을 맞이하는 마음은 예전과 다르다. 많은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족의 의미가 뼈아프게 다가온 설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끼던 친동생을 잃고 맞이하는 설이다 보니 쓸쓸합니다. 반쪽이 사라진 기분입니다.”

100년 해로하고 계신 조성구(93)·윤순임(91) 어르신. 예전처럼 차례 음식을 준비할 수 없지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자식과 손자들을 기다리는 모습은 마치 고향을 지키는 느티나무 같다. 공동체 전통이 사라지는 시대에 더 빛나는 아름다움이 가족의 이름으로 다가온다.

/연지민기자
yeaon@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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