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는 스마트폰을 꺼두세요
설날에는 스마트폰을 꺼두세요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1.21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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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낯선 곳에선 잠시 꺼두세요.”

우리나라 휴대전화 보급률이 100%를 넘어서고 그중 95%는 스마트폰이 차지하고 있는 요즘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 때 휴대전화 광고에 등장했던 카피는 지금도 여전히 서늘하다.

깊은 산 속에서도 막힘없이 통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광고 속 일탈은 그러나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지금, 불가능한 생활 속 일상의 하나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전원이 꺼지면 세상과 단절된 듯 망연자실에 휩싸여 건전한 일상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이고, 모든 길은 오로지 스마트폰에 의해 통한다.

2020년이 새롭게 시작되었고, 우리는 어김없이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수식어와 더불어 내일모레부터 나흘간의 달콤한 설날 연휴를 만난다. 복 많이 받으라는 새해 인사는 SNS를 통해 스마트폰에 넘실거릴 것이고, 정작 우리는 부모 형제를 비롯한 가족과 친지들의 깨어 있는 만남에는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저 인간으로서의 도리이거나 거쳐야만 하는 과정으로 귀성길을 귀찮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올해 설날에는 스마트폰을 끄고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 사용의 시작과 더불어 이미 깊게 중독된 스마트폰과 떨어져 스마트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건 나도 잘 안다.

스마트폰은 뉴스를, 그리고 동영상을 보고, 돈의 자리를 밀어내고 지불수단이 되고 있으며, 모르는 사람들과도 아주 가까이 연결하는 소통과 교류의 창구로써 이미 우리를 교묘하고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모든 일상을 지배하는 스마트폰은 지극히 일방적이고 편향적이다. 다만 우리가 스마트폰에, 그 작은 화면에 의해 건전한 생각이거나 세상사에 대한 확신, 그리고 상식에서 한참 멀리 있는 행동마저도 조종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스마트폰을 통해 그동안 누려오지 못했던 신세계를 만나면서 새롭고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선을 타고 넘나드는 모든 정보는 지극한 일방통행일 뿐이다.

스마트폰, 더 나아가 인터넷으로 영역을 넓히더라도 특정분야에 대한 검색은 연관된 알고리즘의 집요한 작동으로 인해 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관련 검색어가 맨 앞에 링크되는 단단하고 집요한 후폭풍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시대의 총아인 빅데이터가 작동하면서 원하지도 않은 해당 분야의 정보를 집중적으로 제공함으로써 편리함을 돋보이게 한다.

가뜩이나 미디어의 종류가 재앙의 봇물처럼 무작위로 늘어나고, 이에 따른 정보의 양도 감당하기 어렵게 홍수를 이루는 혼잡의 시대 한복판에 우리는 저마다 홀로 서 있다. 그리하여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어떤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은 순간마다 우리가 선택하는 방향은 대체로 나에게 필요한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 심리상태에 알고리즘의 일방통행이 가속과 다량으로 특정분야의 정보를 독점적이고 편리하게 제공되는 바람에 확증편향의 아집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이름으로 그나마 떨어져 살고 있던 부모 형제와 가족 친지 등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기약하는 설날이다. 게다가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스마트폰이 제각기 심어 놓은 확증편향에 의해 대립과 갈등은 더욱 깊어질 수도 있겠다.

몇 년 전부터 설날 만나는 가족들 사이에 금기어가 당당하게 소개되고 있고, `태극기'와 `사람이름 조국'의 대립과 간극이 사회적으로 심화하면서 부모와 형제 사이에 정치적 화제는 절대 꺼내지 않는다는 규칙을 고수하는 집안도 여럿이다.

설날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불편한 사이가 아니었으면 싶다. 고개를 쑤셔 박고 손바닥보다 작은 스마트폰으로 회피하거나 외면하는 대신 눈을 들어 사람의 얼굴을 살펴보는, 그런 설날이 훨씬 더 구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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