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은 서사시다
무심천은 서사시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0.01.1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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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비발디 <사계> 중 겨울 2악장이 잔잔히 흘려 퍼지는 차창 밖으로 무심천변 갈대가 한가로이 나부낀다. 추억 속 무심한 영상들이 흑백으로 스칠 때 갓길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오랫동안 바라본다. 지난달 <꿈꾸는 책방>에서 진행하는 `무심천 연가'에 참석했다가 진행자의 느닷없는 호명에 가슴 깊이 묻어놓은 추억을 누설하곤 며칠째 가슴이 허했다. 아무래도 사랑방 같은 분위기에 마음 깊이 젖은 탓이다.

청주에서 태어나 지천명이 넘도록 청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늘 무심천 반경을 오가는 생활이 마치 임마누엘 칸트의 삶이다. 내게 무심천은 서정과 서사를 아우른 공간이며 오래전 인기리에 방영한 <겨울 동화>같이 물안개 스멀거리는 아슴아슴한 곳이다.

풋풋한 여고시절, 짝사랑에 눈뜬 대상은 불행히도 막 총각 딱지를 떼고 신혼에 한창인 담임 선생님이다.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별 흥미 없는 수학시험을 몇 번이나 만점을 맞고 학년 말엔 우리 반 고정 1등 자리도 뒤바꾸는 혁명까지 일으켰을 정도다. 여고 3년 내내 쓴 두툼한 일기장이 당시 상황을 말해준다. 내색 한 번 안했는데도 어찌 아셨는지 늘 냉정하고 무관심하듯 대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영원히 이 무심천을 서사적 공간으로 품는 사건이 발생했다. 청주 시내 고등학교 총동원 하계 무심천 풀베기 봉사가 있던 날, 낫으로 풀베기 작업을 하다가 코앞의 물뱀을 보고 놀라 지른 비명에 아이언맨처럼 나타나신 선생님은 어디 다친 데 없느냐고 깜짝 놀라 살피셨다. 그것이 처음으로 선생님과 비공식적으로 나눈 첫 대화이자 마지막 지근거리였다. 풀 무성한 여름날 꽃다리에서 모충교 쪽을 지날 때면 항시 그 생각이 벚꽃망울처럼 몽글몽글 피어난다.

졸업식 날, 한 사람씩 악수하며 덕담으로 추천하신 안병욱 에세이 《인생론》은 내 인생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고 그 계기로 독서광이 된 나는 국문학 전공 후 학교에서 독서관련 수업을 하며 문학 활동을 하고 있으니 내 삶에 선생님이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그 이후로도 여전히 무심천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직동 대교 쪽에서 시내로 향하는 무심천변 세 번째 벤치는 첫 미팅에서 만난 법학도에게 김홍신의 장편소설 《인간 시장》의 주인공 장총찬 무용담을 들으며 물소리 미학에 빠졌던 서사적인 자리이다. 장총찬 캐릭터와 흡사했던 그는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첫눈 내리는 날 다시 만나기로 해놓고 무심히 흘려버린 세월이 삼십년이다.

무심천은 그렇듯 내게 연인 같은 존재이다. 그만큼 스토리가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늘 마음이 공허하고 쓸쓸할 때 말없이 찾아와 바라보면 묵묵히 품어주는 존재, 굳이 속내를 말하지 않아도 혹독한 사춘기와 4차원 같은 문청시절을 보내는 내내 늘 변함없이 지켜봐 준 곳이 무심천이다.

언젠가 서울에서 열리는 문학 세미나 참여 차 동승한 차 안에서 권시인이 무심천은 서정시고 한강은 서사시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청주에서 자라 학창시절을 보낸 내 또래들에게 무심천은 서사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더 짙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이 무심천 또한 삼십 년 전의 그 무심천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이 무심천을 배경으로 한 추억들이 있고 무심천변 언저리에서 8할의 시심을 키우며 정서적인 위안을 얻고 살아가니 여전히 무심천은 가슴 저 심연으로 연결된 정신의 탯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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