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것 같았다는 이국종
미칠 것 같았다는 이국종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01.1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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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인간 같지도 않은 xx”.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모욕적인 욕설이다. 아주대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장인 이국종 교수는 왜 상사인 아주대의료원장에게 이런 취급을 당한 걸까. 그는 국민에게 환자에 헌신하는 의사 중의 의사로 인정받고 있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과 귀순한 북한병사 오창성씨를 수술로 살려내면서 유명해졌다. 위중한 환자들을 골든타임 내에 헬기로 후송해 치료하는 외상센터의 필요성을 강조해 정부가 나서게 했다. 현재 전국에는 14곳의 권역외상센터가 가동 중이고 3곳이 개원을 준비 중이다. 이 교수의 진정어린 호소가 여론을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주대가 유치한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는 센터장인 이 교수의 명성 덕분에 환자들이 몰리고 있다. 멀리 전남에서 발생한 사고 환자가 오기도 했다. 300개 병상이 다 차서 환자를 돌려보내야 하는 `바이패스'가 비일비재 할 정도다. 외상센터의 호황을 불러오고 병원의 명성을 드높인 이 교수는 왜 의료원장으로부터 찬사를 받기는커녕 `인간 같지도 않은 존재'로 낙인 찍혔을까.

역설적이게도 환자가 폭주하는 호황이 문제였다. 지난 2018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아주대 등 3개 권역외상센터의 손익현황을 분석한 결과, 센터가 외상환자 1명을 받을 때마다 평균 145만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가는 낮고 인력은 많이 소요되니 환자를 받을수록 손실이 커지는 구조였다. 이런 사정 때문에 정부가 수십억원씩 운영비를 지원하고는 있으나 다른 진료과목에 비해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거기다 헬기가 뜨고 내릴 때마다 나는 소음으로 민원에 시달리기 일쑤이니 병원으로서는 외상센터가 천덕꾸러기가 돼버린 셈이다.

이 교수는 외상센터 병상이 찰 때마다 의료원의 일반 병실을 요구하면서 원장과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뤄 짐작건대 `인간 같지도 않은'이라는 원장의 폭언은 병원 경영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평판에만 매달린다고 이 교수를 비난하는 과정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원장에게 사과와 사임을 촉구하고 나선 교수회가 원장의 언어폭력을 문제 삼았을 뿐 어느 한 쪽의 입장을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은 점도 두 사람의 갈등을 단순한 감정적 대립으로만 볼 수 없다는 여지를 남긴다.

어느 한 쪽의 사과나 사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양쪽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잘 풀어갔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쌍방이 모두 갈등의 책임이 있다는 식의 참으로 한가한 진단이요 처방이다. 생명이 경각에 달해 분초를 다퉈야 하는 환자를 병상이 다 찼다고 되돌려 보낼 수 없으니 일반 병상이라도 내달라고 요구했다가 원장으로부터 쌍욕을 들은 이 교수가 양보하고 이해해야 할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박 장관은 “정부가 지원금을 대폭 올렸기 때문에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는 것 자체로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고도 단언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외상센터 때문에 병원 망한다는 소리를 매일 들으며 살다 보니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외상센터에 적자는 없다는 주장을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체적 검증에 나서야 한다. 병원 쪽 주장대로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라면 지원을 늘리는 것이 정답이다. 이 교수 같은 사람이 적자 경영의 원흉으로 몰려 `미칠 것 같은'고통 속에서 일을 해서야 되겠는가. 지원된 예산이 적절히 쓰이는 지도 살펴야 한다. 지난해 국감에서 이 교수는 병원이 정부가 지원한 간호인력 충원예산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갈등이 외부로 불거진 후 “잘 못 살아온 것 같다”며 “병원에 돌아가기가 싫어졌다”고 했다. 선진국 수준이 됐다며 자찬해온 응급의료정책의 우울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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