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아문(如是我聞), 그렇다
여시아문(如是我聞), 그렇다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20.01.1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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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A와 B의 대화에 C가 개입한다. A는 1+1=2라고 주장하고, B는 1+1=4라고 주장한다. 두 사람의 언쟁은 장시간 팽팽히 맞섰다. 옆에서 지켜보던 스승인 C가 B의 말이 맞다며 A를 불러 혼내줬다. B는 아주 만족하다는 듯 기세등등하게 돌아섰다. B가 돌아가자 스승인 C가 의기소침해 있는 A에게 다가가 “바보하고 싸워서 이기면 뭐 할 거냐”며 어깨를 두드려 줬다는 말을 누군가 의해 그렇게 들었다.

우리가 “그렇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게 과연 얼마나 될까? 그나마 신뢰할 수 있는 게 수학과 과학이다. 주장하는 바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개연성을 열어놓고 접근하는 다른 학문에 비교해 신뢰성이 높다. 가장 신뢰한다는 숫자놀이에서 스승인 C는 왜 B의 말이 맞다고 했을까? 우리의 현실은 위 이야기와 같이 수학으로도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예측불허의 일들이 일어난다. 얼토당토않게 주장하는 사람을 당할 길이 없다. 그저 피해갈 수밖에. 현재의 모순된 사회상을 우리는 늘 질타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정신세계는 20여 년 전 아버지 세대가 만들어놓은 사회상이다. 모순된 사회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개선해야 하는데 사회와 국가를 움직이는 지도층은 그 모순을 되레 이용하려는데 있다. 분명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개선하지 못하는 것은 소속한 집단과 연계되어 있어서 개인의 소리를 쉽게 내지 못한다. 이제는 만연해온 그 조직의 끈을 서서히 놓아야 할 때가 왔다. 대의를 위해서 누구나 큰 소리 낼 수 있는 사회적 구조가 형성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병폐가 있다면 후대들이 큰 불편 없이 살아가도록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기성세대들이 어떤 정신으로 사회의 질서를 정립하고 이끌어나가느냐에 따라 20대들의 미래가 달려있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지도층들의 역할이 절실할 때다. 학습된 경험을 토대로 모순된 것들을 잘 숙지해서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 세대 간의 이해 폭이 고여 있는 저수지나 6개월마다 교체되는 전자 제품을 닮아서야 하겠는가?

억하다가 보니 중년이 되어 무엇을 하려고 해도 정신적 육체적 한계에 부딪힌다.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발맞춰 가려고 그들 틈에 끼어 열심히 배우고 있으나 언제부터인가 슬슬 눈치가 보인다. 오늘도 서울 교육을 받으러 왔다.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지만, 연령층이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3, 40대다. 한 공간에서 함께 교육을 받는데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 젊은이들은 대체로 자기주장이 강하다. 조금 유연하게 대처하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들도 아주 냉철하게 대응한다. 내 젊은 날, 어머니 세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어머니 또한 나를 이해 못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함께 배워야 한다. 젊은 세대를 욕할 게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자면 함께해야 한다. 해서 마음먹었다.

아직 교육이 이틀 남았다. 누구에게나 한 번 왔다가는 인생 멋지게 살다가 갈 일이다. 고령화 사회 꼰대 소리나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60살까지는 무조건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것. 오늘의 내 모습이 후일 자녀의 자화상이자 젊은이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자식은 부모를 닮고 젊은이는 어른을 닮아간다. 맑고 투명한 거울이 되도록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곧 닥쳐올 노년을 위해 점잖게 사는 법과 곱게 늙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게 들은 것(여시아문)이 아니라 “그렇다”로 똑 떨어지는 길을 누가 제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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