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경계선
깨진 경계선
  • 최운숙 수필가
  • 승인 2020.01.1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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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최운숙 수필가
최운숙 수필가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곳곳에 새해 덕담이 오간다. 해돋이의 모습은 붉은 희망을 안고 실시간으로 들어온다. 출근 준비를 끝내고 휴대폰을 열자 “김** 부친상 성모병원 장례식장 특 6호실”이라는 문자가 뜬다. 가볍던 마음이 툭 끊겨 나갔다.

지난 12월 31일, 사무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목욕 후 정화수를 떠 놓고 빌던 어머니의 새해 의식처럼 정리가 필요했다. 바짝 마른 화분에 물을 주자 선명하게 몽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5년 동안 꽃을 피우지 못한 난의 꽃봉오리가 쑥쑥 올라오고 있었다. 다시 촘촘한 눈으로 둘러보자 부옇게 쌓인 먼지가 욕망처럼 책상이며 컴퓨터를 점령하고 있었다.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할 일이 많으면 눈은 많은 것을 보려고 하고 그러다 빛을 잃어 피로를 느끼게 된다. 눈뿐만 아니다. 손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나 다를까? 바삐 움직이던 눈과 손은 균형을 잃고 그릇을 깨고 말았다. 하필, 도예가의 작품으로 많이 아끼는 도자기다. 귀한 인연이 깨진 것 같아 몹시 속상했다. 부랴부랴 도자기 접착제를 구하여 그릇을 잇기 시작했다. 한번 깨진 인연은 다시 붙이기 어렵다. 사람도 사물도 마찬가지다. 그걸 모를 리 없지만,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접착제를 바르고 조각난 두 쪽을 조심스레 붙이기 시작했다. 만가(輓歌)를 들으며 위험한 명상을 할 때처럼, 숨을 멈췄다 이어가며 소리 일부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호흡 일부가 빠져나가자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찌지 직, 돌 씨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내 몸속 곳곳에 박힌 돌들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 같았다. 부서져 나온 몸속 씨앗들이 다시 하나가 되는 소리일 것이다. 어머니의 의식처럼 나의 인연 잇기도 닮아가고 있었다. 깨진 씨앗은 싹을 틔우기 어렵다. 또한, 원래의 쓰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경계선을 타고 얼굴을 내민 접착제를 닦아내자 반듯해 보인다. 처음과 흡사하다.

가장 큰 아픔은 가족을 보내는 아픔이라 했다. 더욱이 부모님을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은 천 년의 돌이 우는소리처럼 어둡고 무겁다. 가장 큰 인연으로 만나 가장 많은 후회를 남기는 통한이다. 새해 첫날의 비보에 나의 마음도 무거워졌다. 20년 전에 떠나신 부모님을 나는 아직 보내지 못하고 있다. 휴대폰을 열면 선남선녀의 앳된 모습과 늠름하고 잘생긴 얼굴이 찬란했던 시절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의 쓰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내 휴대폰에서는 그때의 청춘으로 인연을 잇고 있다.

깨진 그릇을 이어 붙여 쓰임을 다시 만든다. 태어날 때보다 조금 달라졌지만, 망개나무 열매를 넣어두니 붉은 열매가 먼저 떠난 아우 모습처럼 사랑스럽다. 오두막집 벽에 걸린 오래된 사진처럼 빛바랜 얼굴이 웃는 것 같다.

장례식장 가는 길에는 휴대폰 속 얼굴들과 함께해야겠다. 그분 가시는 길에 동무가 되어 구불거리는 길이 젖지 않도록 순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야겠다. 모든 것을 주고 떠났지만, 여전히 나와 함께 하는 것은 내가 아직 보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연은 명을 다하여도 어느 한 쪽에 여전히 남아있으면 연은 아직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나머지 한쪽마저 시간을 접고 기억을 잃을 때 비로소 생을 다하는 것은 아닐까.

회색빛 날씨를 접어 말끔해진 사무실 선반에 걸어둬야겠다. 곧 밝아질 아침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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