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성
북극성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0.01.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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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현관문이 닫힌다. “쾅”하는 요란한 소리가 나에게로 와 부딪힌다. 삽시간에 벽이 생겨 무한한 간극을 사이에 두고 그와 내가 단절된다. 숨이 막힌다. 신새벽에 벌컥 화를 내고 나가는 바람에 더 이상의 다툼은 조용해졌다. 아니, 싸움이 끝난 게 아니다. 안으로 서로가 복닥대고 충돌하고 있는 중이다.

집안이 온통 바늘방석이다. 편히 앉아있지도, 혼자 끼니를 챙겨 먹을 수도 없다.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궁금하여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도 저편에서는 묵묵부답이다. 다 허사다. 느닷없이 요동치는 불길함이 종일토록 들볶아대어 잠시도 편히 마음을 쉴 수가 없다. 아무 일이 없었다는 표정으로 돌아오면 좋으련만 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처음엔 화가 났다. 시간이 조금 흐르니 내게 그렇게 화를 내야 하는 이유를 몰라 어이가 없어진다. 점점 더 지나자 걱정으로 변하고 만다. 작은 눈송이가 점점 눈덩이로 불어나 밖이 어둑해 올수록 나도 깜깜해졌다.

그는 나를 두고 무양무양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따금 센 고집을 부리는 통에 답답하다고 말할 때마다 격하게 항변했다. 스스로 나를 여리고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옹고집인데다 금방 얼어버려 시베리아벌판 같다는 말로 맞불을 놓았다. 그렇게 싸움은 늘 상대방을 불평하는 데서 출발했지 싶다.

매번 같은 폭풍을 피하지 못하고 휩싸여 괴로워하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지혜가 부족한가 보다. 아들이 서른 살이 되도록 세월을 함께 보냈으면서 여태 싸움의 기술을 익히지 못했으니 미련한 탓이다. 인제 보니 이 꼬임은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 생긴 매듭이었다.

매듭을 갖고 얼마를 씨름했을까. 만귀잠잠한 시각에 홀로 남겨진 나에게 더럭 무서움의 해일이 덮친다. 손에 들린 전화기가 떨린다.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반갑다. 이제야 전화를 받는 그도 나를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뻔히 마음 졸이고 있을 줄 아는데 어찌 편했겠는가. 그러니 부부인게다.

둘은 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를 집안에서 꼼짝없이 있었건만 온종일 걸어다닌 듯 피곤하다. 먼 거리를 걸어 힘들게 당도한 느낌이다. 지친 몸을 뉜다. 그의 옆에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새어나온다. `당신이 옆에 있으니 참 좋다.'

어슴푸레 잠이 든 듯하다. 빛도 새어들지 못하는 빽빽한 숲에서 길을 잃어 헤매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인적은 없고 두려울 만치 고요함 속에 갇혔다. 움츠린 몸을 떨며 어쩌다 올려다본 밤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 밝게 빛나는 별이 눈에 들어온다. 그 별을 따라 홀린 듯 떼어놓은 발길이 숲을 벗어나 있다. 안도의 숨을 쉬자 마법처럼 옆에서 자고 있는 그가 보인다. 순간 밀려오는 편안함은 무얼까. 그와 거리가 멀어지면 불안하고 곁에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내가 오버랩 된다.

계절에 상관없이 일 년 내내 볼 수 있는 별이 있다. 위치가 변하지 않고 항상 제자리에서 밝게 빛나고 있는 별이다. 깊은 산 속이나 사막에서 길 잃은 사람들을 제 길로 인도해주는 별. 항해하는 사람들에게 나침반이 되어주는 별. 북극성이다.

막 발견했다. 늘 거기 있어서 몰랐다. 그는 길을 잃을까 비추어주는 북극성으로 내 안에 떠 있었다는 것을. 30년을 보지 못했던 별을 이제 비로소 본다. 선명했던 별빛이 자꾸만 별무리로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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