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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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0.01.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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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앞서가면 족적을 남기지만 뒤처지면 그림자로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최초, 최고, 제일, 1등이라는 단어로 포장되기를 원한다.

남보다 먼저, 남보다 많이, 남보다 높이 업적을 드러내야 성과도 이름도 빛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위정자들은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고 새로울 것 없는 정책도 처음인 양 공개한다.

교육부는 최근 순수기초학문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올해 7900억여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학술연구지원사업 종합계획'을 보면 올해 7988억원을 투입해 인문사회, 한국학, 이공 분야별로 1만 6271개 과제를 지원한다. 이 지원액은 지난해보다 141억원, 950개 과제가 증가한 규모다. 교육부는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만들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신진 연구자들에게 2303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 기존 비전임 연구자 지원사업을 `인문사회 학술연구교수'사업(가칭)으로 확대해 3300명의 석, 박사급 연구자에게 신규과제 연구비를 지원키로 했다. 이공 분야에서는 박사급 비전임연구자 3354명에게 신규 및 계속 연구비를 지원하고, 신진 박사급 연구자에게 최대 1억원을 지원하는 창의도전연구는 올해 신규과제를 대폭 늘려 1000명을 신규 선정해 지원한다. 또 다른 연구의 토대가 되는 순수기초 분야를 육성하기 위해 지난해보다 2배 증액한 174억원 투자 방침을 세웠다.

교육부가 새삼스럽게 기초학문을 대대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대학가에서는 순수기초 학문이 무너진 원인으로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지적한다.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2014년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통해 대학 입학 정원을 감축하기 시작했다.

평가의 주요 항목인 취업률 지표를 충족하기 위해 대학들은 취업률이 낮은 인문 사회, 예술 등 순수 기초 학문의 통폐합에 나섰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대학구조개혁평가로 대학 입학 정원(4년제+전문대)은 2013년 54만 943명에서 2018년 48만 4108명으로 5년 사이 5만 6835명이 줄었다. 지방 대학들은 살아남기 위해 국문과, 철학과, 무용과, 음악과 등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없앴다.

대학에서 기초학문의 설 자리는 사라졌고 그 자리엔 취업률이 높은 보건 계열 학과가 남았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교육정책 탓에 이젠 기초학문을 살려야 한다는 명분으로 8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쏟아 붓겠다며 뒷북을 치고 있다.

연말 지역 중소업체를 운영하는 대표 두 명과 만남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오간 대화의 절반은 특성화고 활성화 방안이었다.

대표 한 분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인재가 몰려 있는 자사고나 영재고 학생들의 70% 이상이 장래 희망이 의사라고 답하는 데 있다”고 말을 꺼냈다. 듣고 있던 또 다른 대표는 “일본은 노벨상 수상자가 수십명 나왔는데 우리나라는 한 명도 없다. 우수 인재들이 기초 과학을 기피하고 안정된 의사 직업으로 쏠리는 데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니냐”고 지적했다.

특성화고 교사들은 말한다. 전 정권 욕해도 좋고 뒷북 정책도 좋으니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했던 고졸 채용 확대 정책을 부활시켜야 경제가 살고 특성화고가 산다고 항변한다.

가야 할 방향을 잃으니 기술장인을 육성하겠다고 설립한 마이스터고에서조차 공무원반이 버젓이 개설돼도 교육 당국이 함구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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