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 사람과 시스템
스토브리그, 사람과 시스템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1.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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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유느님'유재석이 큰 상을 받을 때, 무대 한복판에 선 그를 향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긴장과 노력이 있는가.

주인공의 등장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이 만들어지고 연주되며, 조명과 특수효과, 그리고 수상 배경이 담긴 동영상과 현장 중계 영상, 특수효과, 심지어 도우미에 이르기까지 그늘에서 묵묵히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로움에 의해 주인공 유재석은 한껏 빛이 난다.

그렇게 빛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한 치의 착오와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시스템에 의한 것이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은 그런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을 `몰랐다'며 반성했다. 그 반성은 당연한 시스템이 아니라 거기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의 긴장과 노력에 대한 궁핍한 예의에 해당한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프로야구 만년 꼴찌 팀 `드림즈'의 겨울나기에 대한 이야기인데, 새로운 단장이 부임하면서 야구단을 개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지향점 역시 철저한 자본의 논리에 속한다. 당돌하게 우승을 꿈꾸는 것은 시장에서의 비교우위, 즉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의 획일적 지향이고, 그 과정에서 통계와 분석은 사람의 방출이라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그늘이다.

주인공 백승수 단장은, 존재감이 너무나 뚜렷한데다 사실상 그의 인기에 팀이 전적으로 의존해왔던 간판스타 임동규를 방출한다. 그가 팀에서는 유일하게 수년째 올스타에 선발되었음에도 팀 전력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자신의 통찰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실행한다. 그 과정에서 그가 한 말은 “박힌 돌에 이끼가 많다”는 것이고, “믿음으로 일하는 건 아닙니다”는 일갈이다.

야구와는 인연이 없던, 씨름이나 아이스하키, 핸드볼 등의 종목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화려한 전력을 가졌다고는 하나 그런 백승수 단장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구단주는 없다. 만년 꼴찌인 팀의 성적과 적자가 갈수록 쌓이는 재정적 부담을 안고 있는 `드림즈'구단주가 기회만 있으면 백승수 단장을 희생양으로 삼아 팀 해체의 구실을 찾는 것은 우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자본의 현실이다.

백승수 단장이 찍어 낸 임동규는 적어도 `드림즈'구단과 연고지에서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 좋은'평판으로 임동규는 좁은 세계에서의 독선으로 건재하고 영화로울 수 있었으나, 정작 팀은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게다가 스카우트 담당 팀장 역시 특유의 `사람 좋은'이미지로, 그 바닥에서의 허약하고 편중된 인맥관리와 끝내 부당한 거래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나는 `사람'을 지극히 믿는다. 모든 것의 시작은 `사람'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하고, 특별하거나 선량한 어떤 `사람'으로 인해 좋은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뚜렷한 확신을 갖고 있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에 천부인권과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 그리고 권력과 자본의 욕망으로부터 보호받는 희망이 담겨 있는 따뜻함이 있음을 항상 가슴 뭉클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오랜 고심 끝에 청주시의 도시재생정책과 지원조직의 슬로건을 `사람중심 창조적 도시재생'으로 정한 까닭도 그런 나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에게 나는, “도시재생을 통해 공간이 크게 개선된다 해도 그걸 사람들이 현명하게 사용하지 못할 경우 몇 년 만에 쓸모없는 공간이 될 것이고, 그러면 다시 재건축이나 재생을 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사람'에게도 전제조건이 있다. 그저 `사람만 좋은'경우, 그리하여 어설픈 인정이나 끼리끼리만 견고한 인맥이 울타리를 두텁게 둘러친 경우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얼마든지 독이 될 수 있다. 제도와 도덕적 규범, 그리고 냉철하고 적절한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사람이 먼저'만을 내세울 때 조직을 좀 먹을 뿐만 아니라 부패와 부정의 늪에 빠지는 일은 지금도 널려 있다.

진실과 진정성을 갖춘 `사람'을 찾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사회에서 힘들게 찾은 `사람'이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겨울이 지나면 스토브리그는 끝난다. 백승수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사람'을, 더 `좋은 사람'을 찾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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