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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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 승인 2020.01.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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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새해 이른 아침 동이 트고, 창밖으로 역광을 받아 거무튀튀하게 보이는 실루엣. 과즙이 다 빨린 채 찌질해 보이는 몇 개 안 되는 포도를 단 여러 송이가 힘겹게 줄기를 잡고 있다. 다른 것들은 작년 늦가을을 넘기지 않고 떨켜가 제 역할을 다 했건만, 무슨 미련이 있기에 해를 넘겨서까지 깡마른 모습으로 줄기에 매달려 있다. 모양이 을씨년스러우니 날씨마저 서글퍼 보인다. 참 보잘 것 없는 덜떨어진 녀석들이 새해의 기운을 전한다.

작년에 망가진 수형을 잡느라 강전정한 가지에서 자란 도장지를 자를 채비하고, 잠시 숨을 고르려고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앉은 나를 향해 날아오는 무엇인가에 움찔한다. 주먹만 한 것들이 무더기로 날아 상승해 삼삼오오 편을 가르더니 일제히 포도송이에 매달린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녀석들이 포도송이를 쪼아대기 시작한다. 연신 눈치를 보면서 급한 부리짓이 반복된다. 몇 알은 떨어트리고 어수선하고 야단스럽다. 몇 초간 요란스럽더니 황급히 자리를 뜬다.

참새보단 커다란 직박구리가 먹이를 탐한다. 잽싸게 포도줄기에 앉아 참새들을 몰아내고 그나마 과육이 있는 포도 몇 알 목으로 넘기더니, 쏜살같이 다른 나무줄기로 이동한다. 먹이를 쉽게 빼앗은 녀석, 그 자리를 까치에게 내어준다. 밖에 나가 일을 해야 하거늘 녀석들의 먹이 쟁탈전에 빠져 자리를 뜨지 못한다. 지난해 집을 찾아왔던 지인들이 다시 찾아 맛난 포도를 먹자는 약속에 올 날만을 학수고대하면서 거두지 않았던 포도송이, 꼭 그런 건 아니었고 게으른 탓도 있고, 다시 오지 않은 몇몇 지인을 대신하는 나비와 새가 이뻐서 그런 것도 있었다. 어쨌든 그 통통한 녀석들을 달고도 끝까지 잘 버틴 이유가, 마지막 한 알마저 먹이로 내어주려는 녀석의 마음씀씀이였다. 덜떨어진 녀석이 새해 좋은 이야기를 내게 전한다.

작년 연말이나 새해 연초, 실적보고나 평가, 예산 확보로 바쁘기는 매한가지. 늘 열악하다 푸념하면서도 밀고 나가는 동료의 믿음이 있기에 나름의 돌파구를 찾는다.

“충북의 게임산업 인프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문화콘텐츠나 게임관련 조례나 관련학과 협·단체는 없습니다. 관련기업도 다른 지역에 비해 열악합니다. 충북은 2018년 11월 충북글로벌게임센터가 정식 개소를 하면서, 게임업체 제로에서 18개 업체가 등록, 운영 중입니다. 다른 지역은 광역단위의 별도기관이 게임센터를 전담운영하고 있지만, 저희는 지자체 출연기관의 한 팀이 콘텐츠코리아랩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전시회, 상용화 지원사업을 통해 한해 35억의 매출액을 기록했고, 짧은 과정이지만 게임아카데미를 통해 청년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산학인턴십을 통해 9명 중 4명이 정규직원으로 채용되었습니다.

2020년은 주요추진사업이었던 충북게임기업 지원을 통한 스타기업 발굴 및 육성, 전문인력양성 및 신규 일자리 창출, 전시회 참가, 상용화, 마케팅으로 기업 경쟁력 및 자생력 강화를 위한 시장개척 및 마케팅 사업에 좀 더 공격적인 사업을 진행하겠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자연과 과학의 대립, 문명의 파괴와 재생, 전쟁 비판 등이 주제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등 인문학에서 스토리의 영감을 받고, `나우시카'의 캐릭터 이름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인용했습니다. 상업애니메이션이 되기에는 어려웠던 만화에서 시작,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인문학, 예술적 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에 감명받은 사람들, 성격이 다른 사람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만든 결과입니다.”

무모한 발언까지 감행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창피한 생각이 들어 어이없이 피식 웃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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