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이어갈 역사
2020년 1월, 이어갈 역사
  •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 승인 2020.01.1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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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유난히 매서운 바람이 불던 날, 코끝이 싸해지는 겨울을 온몸으로 느끼며 역사탐방연수 기획을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에 나섰다. 탐방 일정의 하나로 찾은 심훈의 필경사. 충남 당진 구불구불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한적한 시골 풍경 속에 심훈 기념관과 필경사가 자리하고 있다.

1901년 삼천석 지주집안에 태어나 총명하고 수려한 외모의 심훈이었다.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이던 심훈은 삼일운동 참여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고, 이 사건은 남부러울 것 없이 꽃길을 걸을 수 있었던 심훈에게 일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요샛말로 금수저였던 심훈. 그의 큰형과 둘째 형 모두 친일파로 기억되고 있으니,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한 그의 뜨겁고 격정적인 항일정신이 유지될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투옥 중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심경을 짐작할 뿐이다.

“어머님!

며칠 전에는 생후 처음으로 감방 속에서 죽는 사람의 임종을 같이하였습니다.

금세 운명을 할 노인의 손아귀 힘이 어쩌면 그다지도 굳셀까요, 전기나 통한 듯이 뜨거울까요? 그의 마지막 소청을 들어줄 그 무엇이나 우리가 가졌겠습니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그날에 여럿이 떼지어 부르던 노래를 일제히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리는 글월'중에서 -

투옥을 이유로 학교로부터 퇴학을 당한 심훈은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 정부를 이끌던 이동녕, 이시영과 신채호, 여운형 같은 지사들 곁에서 3년 동안 머문다. 이후 심훈은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 시인, 언론인, 영화배우, 영화감독, 각본가의 삶을 살아간다. 심훈 기념관을 둘러보며 그의 이름 앞 모든 수식어는 항일과 독립운동을 위한 모색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심훈 기념관 앞뜰에 놓인 `그날이 오면'이 새겨진 돌 앞에 섰다. 문득 고등학교 학창 시절,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읽어 주시며 목소리가 떨렸던 한국사 선생님의 벌건 눈시울이 떠올라 콧등이 시큰해진다.

`나는 쓰기 위해 시를 써 본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시인이 되려고 생각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닫다가 미칠 듯이 파도치는 정열에 마음이 부대끼면 죄수가 손톱 끝으로 감방의 벽을 긁어 낙서하듯 한 것이 그럭저럭 근 백여 수가 되기에 한곳에 묶어 보다가 이 보잘 것 없는 시가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 시집 `그날이 오면'머리말 -

기념관 옆 필경사는 심훈이 「상록수」를 집필한 곳이다. 글을 짓는다는 의미의 `필경사'에서 심훈은 논밭을 일구듯 조선인들의 마음을 담아 붓으로 글을 지었으리라. 붓으로 일구고자 했던 독립. 그에게 붓은 유일한 연장이었다. 궂은 땅, 돌부리에 호미끝이 부러지듯이 꼿꼿한 붓대는 몇 번이나 꺾였을지. 지금도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의 아픔을 표현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시대를 일구어 가는 여전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2019년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다. 떠들썩한 기념행사와 함께 지난해의 기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어가는 역사의 출발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2020년 새해 첫날에도 어김없이 열렸다고 한다. 겨울 찬바람 속에 울컥한 뜨거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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