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정 황인덕 선생을 추억하며
난정 황인덕 선생을 추억하며
  •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 승인 2020.01.13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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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청주에서 대전 신탄진으로 가는 국도 남청주 나들목 근처, 청주와 대전, 그리고 세종시를 마주하고 있는 요충지 행정구역상으로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에 `꽃동네대학교'라는 예쁜 이름의 대학이 있다. 일명 `꽃대'라고 불린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여 섬기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라는 교훈으로 1997년 5월 음성 꽃동네와 천주교 청주교구청이 사회복지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선도하기 위해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학교를 설립하였다. 그해 학교 설립에 필요한 토지를 마련하여 7월에 학교법인 꽃동네 현도 학원으로 인가를 받았다. 1999년 개교하여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고 체험하여 우리 사회와 세계 인류의 복지 구현에 이바지하는 작지만 큰 대학이다.

이 꽃동네대학교에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 있다. 은총관이라는 대강당 옆에 작은 화단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에 기념비와 어록 등의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가까이 가보면 이곳이 어떤 중요한 인물의 묘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매당묘원'이라는 표지석이 독립유공자인 난정 황인덕 선생 부부의 묘소라고 소개한다. 묘소 앞쪽으로 몇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추모비와 함께 `일본인에 고함이라는 선생의 연설문'과 2009년에 묘소를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선생의 덕을 칭송하는 `늙은 천리마는 비록 마구간에 엎드려져 있으나 뜻은 천리를 달리는데 있고, 나라 지킨 열사는 늙은 말년에도 그 씩씩한 마음이 그치지 않더라'라는 글귀가 학생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황인덕 선생은 1921년 충남 연기(현재 세종시)에서 태어나 서울 양정고보를 졸업하고,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길은 경제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일본 중앙대에 입학하여 경제학부에서 공부하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수학하던 중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중국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선생은 결코 일본군의 총알받이로 살 수 없었다. 1944년 5월 학도병 5명과 함께 우여곡절 끝에 일본군 부대를 탈출하여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였다. 그 후 선생은 독립군의 일원이 되어 중국 호남성과 강서성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면서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선생은 특히 영어를 비롯하여 중국어와 일본어에 능통하여 광복군의 선전과 대외 활동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광복 후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고국에 돌아올 때 영광스런 귀국이 아니라 다른 임정 요인들과 같이 개인 자격으로 쓸쓸히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선생은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았기 때문에 1946년 이범석 장군과 함께 귀국하여 40여 년간 대한민국의 농촌 근대화 운동에도 앞장선 인물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여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도 하였다. 아울러 부인인 정경례 여사도 이곳 교정에 함께 잠들어 있다.

2020년 새해에는 불행을 극복하고 의로움과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며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난정 황인덕 선생의 얼을 계승한 어진 인재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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