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인의 가죽작업 도구, 밀게
구석기인의 가죽작업 도구, 밀게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20.01.1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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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구석기시대 유적의 발굴을 통해 확인되는 물질문화는 정적이고 단편적이기는 하나 이와 관련된 옛사람들의 행위와 생활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석기가 대표적이다. 인간활동의 징표이며 석기의 유사성과 차이점은 구석기시대의 문화단계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구석기인들에게서 석기제작의 아이디어는 일상생활에서 얻은 경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양한 삶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점차 구체화해 나간 결과물이 곧 석기이기 때문이다.

구석기시대 석기제작자들은 어떤 형태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형적으로 도구로 재현해낼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었다. 어떤 암질, 어떤 모양의 돌을 선택하고 어떠한 기술을 적용하여 어떤 형태(기능)의 도구를 만들 것인지를 머릿속으로 설계하고 실행하였음을 다양한 석기를 통해 알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컴퓨터의 프로그램처럼 석기제작의 전 과정이 머릿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 톱, 숟가락, 포크와 같은 오늘날의 대량생산된 도구들은 같은 틀에서 반복 생산되어 크기, 형태, 재질, 기능 등이 모두 똑같다. 그러나 구석기인이 손으로 만든 각각의 석기는 만들고자 하는 의도, 기술, 암질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곧 도구에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담겨 있어 이를 통해 생계유형, 문화단계, 생업방식 등 구석기인들의 삶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선사인류의 오랜 석기제작 기술전통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도구 중 하나가 밀개(end-scraper, 搔器)이다. 또한, 밀개는 일상생활에 널리 쓰였던 가사도구로 후기 구석기시대에 특히 발달했던 도구 중 하나이다.

밀개의 주요한 특징은 돌날과 격지의 끝날 또는 상대적으로 좁은 날에 연속적인 잔손질이 이루어져 60º 내외의 가파른 둥근날을 형성하고 있는 석기로 정의되고 있다. 밀개의 형태는 다양하여 기술-형태적 속성에 따라 격지 밀개, 돌날 밀개, 부채꼴 밀개, 둥근 밀게, 손톱모양 밀게, 배모양 밀게, 콧등날 밀개 등 80여 종류로 분류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문화를 대표하는 단양 수양개유적 6지구 2문화층에서는 332점의 밀개가 출토되었다. 전체 출토유물 21,744점의 1.5%를 차지하며 완성된 도구 중 가장 많다. 암질은 입자가 고운 규질계 돌감(유문암,셰일, 혼펠스)이 94%로 암질을 선택적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크기는 소형(2.1~2.6cm), 중형(2.6~3.4cm), 대형(3.5~4.8cm), 특대형(5cm 이상)으로 다양한 크기로 제작하였다. 암질선택, 제작기법, 날과 형태, 정형성 등 밀개 제작에 특화된 경향성을 보여준다. 밀개 형태와 날 모양으로 볼 때 제작-재생-폐기에 이르는 일련의 양상을 뚜렷하게 볼 수 있으며, 제작에서 폐기까지 날의 관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밀개는 무슨 일을 하는데 쓰였을까? 그 쓰임새 규명을 위해 밀개에 남아 있는 미세한 쓴 자국을 현미경 분석한 결과 모두 가죽과 같은 부드러운 동물재료 작업과정에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즉, 사냥한 동물의 가죽을 벗긴 다음 안쪽에 남아 있는 피막이나 힘줄 등을 제거하고, 가죽을 무두질하는 데 사용하였다. 이 도구가 유적 내 일정 공간에 집중되고 출토 수가 많으며 가죽과 관련된 작업흔적이 확인됨은 이곳에 장기간 머물며 일상생활을 하였음을 의미한다. 후기 구석기시대 수양개 사람들이다.

22,500년 전 햇볕 잘 들고 먹거리가 풍부한 남한강가 수양개에 살았던 후기 구석기인들은 크고 작은 밀개를 제작하였고, 가죽작업 중 날이 닳거나 흐스러지면 재생하여 사용하는 등 매우 지혜로운 삶을 살았던 모습이 밀개에 짙게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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