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달라도
길은 달라도
  • 김경수 수필가
  • 승인 2020.01.0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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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수필가
김경수 수필가

 

병자년 어느 날 삿갓을 쓴 선비가 청음의 대문을 두드렸다. 두 사람은 서로 반갑게 맞이하였지만 마주치는 눈빛은 예사롭지 않게 부딪치고 있었다. 한 사람은 화친을 주장하는 지천 최명길이고 또 한 사람은 척화를 주장하는 청음 김상헌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어우러질 것 같지 않지만 나라를 위한 서로의 믿음은 굳건한 사이였다. 지천이 청음에 절교를 청하며 목을 달라고 했다. 청음은 지천에게 무엇을 내놓겠냐고 했다. 지천은 명예를 내놓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천은 지금 이대로라면 청에 침략당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다음의 일도 생각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 대책으로 저들에게 화친론자들을 내세워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과 척화론자들의 처단을 요구한다면 한 사람으로 많은 희생을 막아야 하는 일을 청음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된다면 지천은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이 되고 청음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린 충신이 되는 것이었다. 청음은 지천이 오명을 쓰면서 얻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지천은 종사를 구하기 위해 소임을 다해 보려는 것뿐이라고 했다. 또한 이 지천의 오명을 아는 이 없어도 청음이 알아주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길을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두 손을 꼭 잡은 채 그들은 절교가 아니라 굳은 약속 같았다. 가는 길은 반대라고 해도 어찌 충심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와중에 청국이 최후통첩한 날이 지나가고 말았다. 조정은 정묘년의 호란을 잊고 있는 것 같았다. 곧바로 그들은 단숨에 조선을 쳐들어왔다.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몽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곳에서도 희망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침내 청태종의 마지막 통첩이 남한산성에 전해졌다. 지천이 붓을 들었다. 항서나 다름없는 국서였지만 종국의 파국만은 면하고자 하는 글이었다. 척화를 주장하던 대신들도 지천의 글을 보면서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때 청음이 달려들어 이 글을 찢어 버렸다. 그 순간 청음은 찢었지만 지천은 주워야 되겠다고 했다. 지천은 웃는 얼굴로 흩어진 종이쪽을 주워 모아 풀로 붙였다. 명분과 실리가 이런 것이었다. 여기서 찢은 사람도 옳고 주운 사람도 옳다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두 사람의 상반된 견해를 모두 옳다고 보는 것을 양시론이라고 하였다. 결국 호란은 비극으로 끝을 맺었지만 두 사람의 충심은 길이 달라도 나라를 위한 마음은 같았던 사람들이었다. 비록 척화와 화친의 그들이었지만 명분론과 실리론을 우정으로 주고받는 선비들의 의기를 어찌 당파 싸움으로만 몰아갈 수 있을 것인가 무릇 정치를 함에 있어 나라를 위한 생각은 같을지라도 정책은 다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신봉승의 정쟁을 보면서 사람들은 하나의 공동조직체에서 그들끼리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목적과 뜻이 같을지라도 서로가 저마다 길이 다르다는 이유로 심한 논쟁을 벌이는 경우를 보곤 한다. 그렇다고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름이 없음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고집하는 길을 가려고만 한다. 하지만 때론 지나칠 때가 있어 그 주장이 의아하고 당혹스럽게 보일 때가 있다. 다만 그것이 다른 논쟁으로 비화되어 그들의 진실 된 주장이 왜곡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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