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어느 날, 갑자기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0.01.0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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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만 명의 사람들이 하룻밤 새 대도시에서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사라진 그 사람들을 대체로 누가 어디로 몰고 간 것일까. 그것은 땅속 세상 인간들의 소행이었다. 사람이 회색이 되었다. 아니 온통 회색의 세상에서는 사람도 회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는 분명 괴기스럽고 공포로 몰고 가는 것은 맞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무섭지가 않다. 공포소설이라 함은 왠지 사람의 가슴을 서늘하게 해야 하지만 이 작가의 소설책 한 권 속에 담긴 단편들은 모두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무서움이라고 해야 맞다. 작품의 결말에는 언제나 뒤틀린 세상을 바로 잡아주는 메시지로 갈음이 된다.

엉뚱하고 천진하다고 해야 할까. 상상의 나래가 어찌 이리도 무한한지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회색인간》, 김동식. 이름과 모습이 정말 잘 어울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책 표지를 열자마자 저자의 사인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야 말았다. 또박또박 쓴 `고맙습니다. 김동식 올림'이라는 글씨체에서 또 한 번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학력은 고졸이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 성수동의 주물 공장에서 10년쯤 일을 하다 온라인 커뮤니티 공포 게시판에 창작 글을 올리면서 인기 작가가 되었다. 이쯤 되면 아마도 이 사람은 책 좀 읽은 사람이겠다 싶겠지만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간다. 그가 읽은 책은 열권도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은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500도가 넘는 뜨거운 아연을 다루면서도 자신의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속에서 수많은 요괴를 만들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사람의 삶은 주변의 환경이 만든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 말이 왠지 공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아마도 김동식 작가를 알게 된 이후일 것이다.

요즘 항간에 떠도는 수저들이 있다. 흙수저, 동수저, 은수저, 금수저.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발판을 마련한 사람들이라면 은수저 이상은 돼야 한다. 흙수저는 물려받은 게 거의 없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다고 한다. 달리기를 하려면 모든 사람들이 같은 출발선에 서야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각자의 출발선이 다르다. 그러니 아무리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이를 악물고 뛰어 봐도 출발선이 저만치 앞에 있는 사람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다.

부모의 재력이 자식의 장래를 결정하는 사회, 그것은 불평등의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가 이미 그런 사회로 진입했을지도 모른다. 청년들이 자신의 무지갯빛 미래를 위해 열심히 달려나가게 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김동식 작가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물론 1년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집필한 단편 소설이 무려 300여 편이 넘는다는 것은 놀라울 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에게 이끌리고 환호하는 것은 그의 이력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성공한 사람이 흙수저라니, 믿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작은 희망을 품어 본다. 수많은 흙수저 김동식들에게 용기가 되었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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