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의미
2020년의 의미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1.0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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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새해가 2020이라는 숫자로 우리에게 찾아왔다. 10진법을 익숙하게 사용하는 터라 올해를 구분하는 숫자 2020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우리는 숫자를 기수와 서수로 구별해서 쓴다. 1, 2, 3, 4,…로 이어지는 산술용어인 기수는 양을 표현하는 숫자의 배열이며, 단순한 셈이나 양의 크기를 표현하는데 사용된다.

서수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처럼 어떤 사물의 수치적 위치를 나타낼 때 쓰인다. 서기 2020년은 그 수에 따라 다른 수들이 정해지는 기수 형식의 2019 다음이고 2021의 바로 앞에 위치한다. 2020년은 또 서력기원으로부터 2020번째에 해당하는 서수로서의 위치도 함께 갖는다. <패트리샤 반스 스비니, 토머스 E 스바니 공저. `한 권으로 끝내는 수학' 참조> 문화와 습관에 따라 1부터 숫자를 세거나 0을 숫자의 시작으로 삼는 경우가 함께 있다. 1을 시작으로 할 경우 2020년은 2010년대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 해가 될 것이고, 0부터 셈을 할 경우 올해가 2020년대의 시작이 비롯되는 연도로서의 의미가 있다. 일하는 날과 쉬는 날의 구분을 일요일에서 시작해 월, 화, 수,…로 여기는가, 월, 화, 수,…로 이어지는 일과 노동의 고단함 뒤에 일요일의 달콤한 휴식을 만나는가는 사뭇 다른 의미가 있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2020년을 2010년대의 끝으로 여기지 않는다. 지난해 2019년으로 2010년대는 마무리되었고, 올해부터 대망의 2020년대가 열린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나는 지인들에게 연말과 새해 메시지를 보내면서 `공상과학 소설에 등장했던 2020년'을 화두로 삼았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인간의 신체에 전자기기들을 이식해 사용하며, 로봇이 일상의 대부분을 대신할 것이라는 소설적 상상력은 이미 현실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고 가상의 세계와 현실의 실체 사이에 엄연했던 경계가 이미 무너졌거나 크게 허물어질 것으로 예견되는 세상의 2020년을 맞으며 구태여 기수와 서수 등 복잡한 수학이야기를 끄집어 낸 까닭은 다 이유가 있다. 지극히 편리하거나, 혹은 기계에 의해 일상이 장악되면서 인간의 존재가치가 크게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불온한 예측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학기술의 진화에 대한 원인과 과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에 절대로 인색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양극화의 간극은 갈수록 벌어지고 있음에도, 기회의 차별화, 원인에 대한 사려 깊은 분석, 그리고 과정에서의 불편부당에 대한 성찰을 각성하지 않는 세태에 대한 경계 또한 상실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진화에 따라 질풍노도와 같은 질과 양으로 세상이 바뀌고, 인간이 편리해지거나 극단적으로 존재가치를 상실할 위험이 커질 수 있는 2020년대의 종횡무진은 그렇다 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존엄한 인간의 생명은 여전히 보호되지 못하면서 우리나라에서만 2003년부터 9년 동안 어림잡아 18만 명이 자살과 산업재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으니, 같은 세월 동안 전쟁을 벌인 이라크에서의 사망자 숫자 16만 2천여 명을 훨씬 웃도는 충격적인 결과는 모르는 척하며 우리는 살고 있다. 더 비참한 것은 이러한 비극이 아직도 멈추지 못하고 있으며 별로 나아질 기미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불로소득의 허황된 꿈을 버리지 못하고 부동산 불패 신화를 여태 신봉하고 있으며, 가진 돈의 양에 따라 함부로 사람을 차별하고, 신분과 재력, 그리고 권력을 대물림함으로써 경계와 갈등을 고착화하기에 갈수록 혈안이 되고 있다.

2020년대는 우리 모두가 엄청난 변혁을 피할 수 없을 과도기적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날 것이고, 이를 사람답게 극복해 나가야 할 슬기는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다름이 없다. 세상 모든 일,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 없는 일은 없으니, 매사에 더 간절하게 의미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며 2020년을 사는 일. 정채봉 시인은 <첫마음>이라는 시를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유의 노래 <너의 의미>를 흥얼거리는 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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