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지혜와 용기
새해의 지혜와 용기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0.01.0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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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새로운 한해 경자년庚子年이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쥐띠 해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이 가지는 쥐에 대한 인상은 머리가 좋고 재빠르다는 표현을 주로 쓴다. 옛말에도 머리가 뛰어나고 비상한 사람을 가리켜 `얼굴에 생쥐가 오르락내리락 한다'라고 하지 않던가. 더불어 쥐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 많아서 대인관계에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내 바로 아래 남동생은 쥐띠 해에 태어났다. 그리고 돼지띠인 나와는 연년생으로 거의 쌍둥이처럼 자랐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엄마는 내게 동생을 잘 데리고 다녀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늘 딴생각을 머릿속에 달고 사는 나는 걸음도 느렸고 행동도 민첩하지 못했다. 반면 동생은 언제나 날다람쥐 나뭇가지 옮겨 다니듯 재빠르고 머리도 영민해 오히려 서로의 역할이 바뀔 때가 많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봄인가. 교정 나무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지나가던 상급 학생이 나를 놀렸다. 테가 두꺼운 안경을 쓴 나를 보고 부엉이라며 웃었던 것 같다. 마침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동생은 직감적으로 누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느꼈는지 한달음에 달려와 덩치로 보나 나이로 보나 자신의 두 배 가까이 되는 형들에게 무작정 덤벼들었다. 그날의 사건은 꽤 오랫동안 학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회자되었다.

동생에 관한 가장 강한 기억은 아마도 고3 수험생 시절인 듯싶다. 동생의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는 취직이 잘 되는 산업대를 추천하셨다. 그러나 동생은 아버지의 말씀을 왼쪽 귀로 듣고 오른손으로는 자신이 염두에 두고 있던 대학에 원서를 썼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가 추천한 대학에는 떨어졌으니 천상 차후의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아버지의 뜻을 돌려 거역하였다. 그렇게 동생은 종종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유유자적 걸었다.

영민함도 민첩함도 자식들 중 가장 월등해 늘 부모님의 자랑이었던 동생은 이제 흰머리 듬성듬성한 중년의 세월 앞에서도 깔끔한 대인관계로 주변에 많은 사람을 거느리며 여전히 바쁘게 살고 있다. 그러나 성공했노라고 자부하는 얼굴의 이면에는 홀로 감당해야 할 고단한 밖에서의 산더미 같은 일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점점 병원을 찾는 횟수도 잦아지고 있다며 속내를 드러낸다. 마음이 많이 쓰인다. 이제는 젊음을 자신하기보다는 소소한 건강을 챙기고 가족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삶에 한층 겸손해야 할 때이지 싶다.

새해를 맞아 많은 이들이 저마다 한 해를 계획한다. 개인의 자잘한 희망부터 담대한 포부까지 주먹을 불끈 쥐는 이들이 주위에 참 많다. 故 신영복 교수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새해의 지혜와 용기에 대한 글귀가 있다. 세모歲暮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이고,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이니 더불어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매년 새해가 될 때마다 들춰보며 그 뜻을 새기는 글이다. 올 한 해, 쥐처럼 부지런히 달리면서 저마다의 지혜와 용기로 단단해져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으로 우뚝 서는 한 해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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