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새해를 맞으며
경자년 새해를 맞으며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20.01.0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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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잔설이 햇살 너머 응달에 고명처럼 얹혀 있던 기해년 마지막 날과는 사뭇 다르게 경자년 새해 아침은 흐리다. 하늘이 찌푸려도 까치는 새해 그림을 그리듯 음표를 튕기며 명랑하게 날아간다. 저편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나 경자(庚子)가 아니야 명자(明子)야' 하며 숨바꼭질한다.

구정이 신정에 밀려 뒷방 신세가 되어 버린 요즘, 많은 사람이 해돋이를 보러 동으로 남으로 소원을 빌러 가는 것을 보면 신정에 떠오르는 태양은 신적 존재임이 틀림없다. 나도 몇 가지 소원을 품고 뒷산에 올랐다. 어느 때부터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닌 타인을 향한 기도가 많아졌다.

오늘도 나와 관계 맺기 한 사람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안녕을 기원하러 산에 오른다. 언제부터인가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커졌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잘 사는 방법을 주위 사람들을 통해 배운다.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정신없이 살다가 보니 어느새 중년이라는 언덕에 서 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란다. 세상에 끌려가는 인생이 아니라 주체로서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올해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예년보다 세 가지가 더 늘었다. 주로 하는 일 외에 짬짜미하는 봉사 활동이 요즘은 주업을 압도하려 한다. 젊은 날, 봉사 활동 가자고 하던 벗에게 대가 없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냉정하게 던진 말이 무색하게 되었다. 냉정이 시간 속에서 온정으로 움터 세상 읽기를 한다. 생각과 행동의 범위가 방향 전환의 갈림길에 서 있다. 올해는 정신 바짝 차리고 시간 할애를 잘해야 할 것 같다.

남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데, 다행히도 돈을 쓰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돈이 많아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월급쟁이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아이 셋 키우며 눈물 콧물 짜며 평범하게 살다가 나를 다스리기 위해 뛰어든 곳이 봉사 활동이다. 내 비록 중소도시에서 중간 평수 아파트에 살지만, 내 삶은 아주 고매한 부자다. 어느 갑부보다도, 고상한 철학자보다도 위대한 삶을 산다.

지금은 세상 부러운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어서 좋다. 이따금 봉사 활동하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다. 함께 땀을 흘리며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땀을 흘리고 난 후 김밥과 국수 한 그릇 먹으며 마주하는 얼굴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해 본 사람만 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동참해 흘리는 사람들의 땀방울은 아름답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선량한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새해 첫날이 지나자마자 내가 활동하는 한 단체의 신년회가 있는 날이다. 이 단체 또한 봉사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단체다. 대체로 온순한 사람들이라 큰 잡음 없이 오랫동안 관계를 맺고 있다. 환경에 따라 행복의 측도도 달리하는 세상, 올해 우연히 이 단체의 장을 맡게 되어 새해부터 숨 가쁘게 달려야 한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단체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원들 간의 단합과 소통이다.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깜짝 이벤트를 한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고 회의 후 떡국을 먹고 전원 찜질방으로 가기로 했다. 심신이 정화된 사람이라면 원활히 소통하며 어떤 일도 척척 잘해나가리라 믿는다. 경자년 찌푸렸던 하늘에 한 줄기 광명이 비췬 것처럼, 춥고 배고픈 이에게 희망의 태양이 떠올라 살만한 세상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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