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가락
엄지손가락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20.01.0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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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엄지손가락은 오늘도 바쁘다. 식사준비, 빨래, 청소하기, 글쓰기 등으로 잠잘 때를 제외하곤 쉴 틈이 없다.

꽤 오래전부터 손을 쓸 때마다 오른쪽 엄지손가락에 통증이 왔다. 그의 짝인 왼손 엄지의 통증을 느낄 때와 증상이 비슷하여 걱정이 앞서면서도 차일피일 병원 가는 것을 미루고 있다. 아직은 통증을 참을 만하고, 지난번 수술로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왼쪽 엄지손가락에 통증이 오더니 구부려지지도 스스로 펴지지도 않았다. 누군가 펴주어야만 했다, 병원을 찾으니 `방아쇠수지증후군'이란다. 의사는 수술을 하여야 한다고 했다.

70년이 넘도록 아끼지 않고 썼으니 그럴만하다. 엄지손가락 안쪽의 아랫부분을 째고 수술을 한 후 여러 날 물리치료를 받았다. 수술을 받고 나니 손가락이 저절로 펴졌다. 아무래도 오른쪽 엄지도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엄지손가락은 맏며느리였다. 힘들어도 불평이 있어도 참아야 했다. 명절이나 가족행사에 그가 빠지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솔선수범해야 했다. 의젓하고 마음이 넉넉해야 했다. 자신도 다른 손가락들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늘 이해하고 마음이 넓어야 했다. 검지, 중지, 약지, 새끼지가 반짝이는 보석반지를 끼고 자랑을 늘어놓을 때에도 묵묵히 바라보며 시샘하지 않았다. 그는 보석반지를 끼고 호사를 누리며 자랑해 본 적이 없다.

엄지손가락은 고단함도 아픔도 참아야 했다. 그가 움직이지 않으면 네 손가락이 힘을 합쳐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웬만한 아픔을 숨기고 일을 했다.

엄지손가락은 겸손하게 살았다. 일을 할 때엔 제일 힘들고 중요한 역할을 맡으면서도 잘났다고 나서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공로를 치켜세우며 `엄지 척'으로 기쁘게 해주는 겸손의 미덕을 지녔다.

엄지손가락은 자식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는 어머니와 같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슬퍼도 속울음을 한다. 자식을 위해 다 내주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내겐 어머니 외에도 엄지손가락 같은 분이 있다. 내가 많이 의지하고 존경하는 분이다. 그는 부지런하고 깔끔하여 온 집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음식 솜씨도 장금이 못지않다. 그의 얼굴에선 온화하고 기품이 흐른다. 말씨와 몸가짐에선 은은한 향기가 품어난다. 마음이 따뜻하고 너그럽다. 봉사정신이 투철하여 주위에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달려가 도움을 주고 모임에서는 솔선수범한다, 자녀들을 잘 키워 부러울 게 없는 분이지만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힘든 일이 있을 때엔 나의 심정을 숨김없이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는다.

두 살 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나는 언니처럼 어머니처럼 상담사처럼 그분을 의지한다. 그는 아마도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장점이 많고 좋은 일을 많이 하겠지만 드러내지 않는다.

엄지손가락 같은 형님의 겸손과 이웃사랑을 닮으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새해에는 자신을 치켜세우거나 드러내지 않아도 소중한 엄지손가락의 존재처럼 살겠다고 다짐을 한다.

서둘러 엄지손가락의 아픔을 치료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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