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밥값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0.01.0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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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이 밥값을 하는 것이다.

말로는 쉽다.

나이를 먹을수록, 지위가 올라갈수록, 휘두를 힘이 커질수록 밥값의 무게는 늘어난다.

밥값의 무게가 큰 사람들이 밥값을 못하면 서민의 밥그릇은 텅 빈다. 정치인들이 밥값을 못하면 국민이 힘들다. 교육부와 교육감이 밥값을 못하면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힘들다.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밥값을 못하면 직원은 물론 그 가족의 생계까지 위협받는다.

우리는 밥만 축내고 값을 못하는 고위직들을 수없이 봐왔다.

높은 자리에 앉아서 권력만 누리고 책임을 회피한 경우도 한두 번도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은 성직자나 철학자들의 몫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영향력을 미친다.

포장마차 주인들은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시름을 달래주고, 아파트 경비원들은 주민의 안전을 책임진다. 택시기사들은 서민의 발이 되어 거리를 누비고, 재래시장에서 두부를 팔고 생선을 파는 상인은 서민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든다.

이렇듯 서민은 묵묵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데 사회적 직급이 높고 배울 만큼 배운 지식인들은 왜 밥값을 하지 못할까?

대학교수들은 입시 스펙용으로 자신의 자녀를 논문 공동 저자로 등재하는가 하면 정치인은 서민의 삶은 내팽개친 채 이념에 갇혀 밥그릇 싸움에 날을 새고 있다. 고위공직자 비리는 툭하면 터지고,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도를 넘은 행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권력이 있으면 뭐하고 힘이 있으면 뭐하나. 힘도 제대로 써야 영향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선한 영향력으로 화제가 된 서울 마포구의 `진짜 파스타'를 운영하는 오인태 씨. 그는 우연히 구청을 찾았다가 연휴나 방학 때 밥을 굶을 우려가 있는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에게 지자체에서 발급하는 `꿈나무 카드(아동급식카드)'의 존재를 알게 됐다. 배고팠던 시절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던 오 대표는 식당주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아이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난해 7월 오 대표는 결식아동을 위해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싶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얘들아 그냥 삼촌, 이모가 밥 한 끼 차려 준단 생각으로 가볍게 와서 밥 먹자. 몇 개의 내용만 지켜주길 부탁할게. 가게에 들어올 때 쭈뼛쭈뼛 눈치 보면 혼난다. 뭐든 금액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거 얘기해줘. 매일매일 와도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고 웃으며 자주 보자.

당당하게 웃고 즐기면 그게 행복인 거야. 현재의 너도, 미래의 너도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아이들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보낸 감사 편지를 받을 때면 오 대표는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구나 사람답게 살고 있구나 진심어린 위로를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정치인들은 의석수가 아닌 국민의 얼굴에, 교육감들은 보은인사가 아닌 학생의 얼굴에, 기업인들은 가족이 아닌 직원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하면 밥값을 한 것이다.

1일 인크루트와 알바콜이 성인남녀 총 968명을 대상으로 `2020년 본인이 바라는 새해 소망과 가장 가까운 사자성어'를 조사한 결과 1위는 `만사형통'(모든 일이 뜻한 바대로 잘 이루어짐)으로 나타났다. 분야별 직장인은 `만사형통', 구직자는 `무사무려'(아무 생각이나 걱정이 없음), 자영업자는 `마고소양'(바라던 일이 뜻대로 잘 됨)을 각각 1위로 꼽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밥값만 한다면 만사형통은 문제없을 듯한데 허황된 꿈이 되질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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