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이 품격을 보여줄 때
한국당이 품격을 보여줄 때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12.2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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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1964년 7월 2일은 미국사에 한 획을 그은 날이다. 이날 린든 존슨 대통령이 모든 흑인 차별법들을 원천 폐기하는 `민권법'에 서명했다. 링컨이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후 노예 해방을 선언한지 100여년이 지났지만 흑인은 여전히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식당과 여관은 물론 공원 등 공공시설도 출입을 통제당하거나 유색인종 전용 공간을 이용해야 했다. 성경도 백인과 흑인용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흑인의 투표권을 허용했지만 주마다 갖가지 제한규정을 둬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존슨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이다. 공화당의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포한 순간 그에 반대해온 미국의 남부는 민주당의 텃밭으로 돌변했다. 존슨이 민권법을 추진하자 남부의 반발은 극심했다. 당내에서도 “민주당의 전통적 아성인 남부를 송두리째 잃게 할 해당 행위”라는 비난이 거셌다. 존슨은 공화당의 찬성 의원들과도 공조해 법안을 밀어붙였다. 법안이 상정된 상원에서 반대 의원들이 76일간의 필리버스터로 저항했지만, 법안은 통과됐고, 흑인은 보다 실효적인 공민권을 갖게 됐다. 존슨은 이듬해 투표법을 개혁해 흑인 참정권을 확충했고, 임기 중에 최초의 흑인 장관과 연방대법관을 임명하는 업적도 남겼다.

실제로 남부는 존슨의 민권법안이 발효된 후 민주당에 등을 돌렸고 공화당 우세지역으로 고착됐다. 존슨이 소속정당과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연연했다면 민권법 도입은 한참 지연됐을 것이다. 그의 과감한 기득권 포기가 당시 미국의 결정적 오점인 인권후진국 이미지를 털어냈다. 그리고 미국을 자유진영의 명실상부한 종주국으로 격상시켰다. 개혁은 어렵다. 모든 개혁은 강자의 기득권 포기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민권법 시행은 개혁의 어려움을 웅변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지난 27일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지역구 253석은 그대로 두고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에 50% 연동형 비례제를 적용하는 안이다. 지역구를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75석으로 늘려 준연동제를 도입하기로 한 원안을 돌아보면 개혁법안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누더기가 됐다.

연동형 비례제에 `개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것은 한쪽이 제동을 걸면 국회가 전신마비에 걸리는 지긋지긋한 양당제의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기 어려운 군소정당에 유리한 방식으로 비례의석을 배분해 연정과 중재가 가능한 다당제로의 전환을 꾀하자는 취지이다. 그동안 지역구를 나눠갖고 비례의석까지 과점해온 민주당과 한국당의 기득권 포기를 전제로 한 개정이다. 법은 개정됐지만 성패는 아직도 두 정당의 의지에 달려있다.

개정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한국당은 비례의석만을 겨냥한 `위성정당'창당을 공언했다. 지역구는 한국당 명패로 치르고, 군소정당끼리 경쟁하게 될 비례의석은 새끼정당을 하청해 쓸어오겠다는 냉정한 작전이다. 선거법 개정의 취지와 목적을 무위로 돌리겠다는 의도이다. 민주당이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면 개악 중의 개악이 될 판이다. 한국당이 입법 절차에서 배제되기는 했지만, 선거법 개정안은 다수의 당이 다수결 원칙에 따라 통과시킨 법안이다. 한국당이 국회를 합법적으로 통과한 법안의 무력화에 나선 것은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이다. 30석에 불과한 연동형 비례의석에 집착해 변칙을 동원하고 군소정당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모습에서는 제1야당의 품격도 전략도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당에 필요한 것은 위성정당보다 중도 군소정당을 우군으로 포섭할 수 있는 도량이다. 달라진 틀에서 새로운 전략을 도모하는 것이 정치 변화를 갈망하는 다수 국민의 바람에 호응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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