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열쇠
천국의 열쇠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9.12.2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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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성탄절을 보내며 예수님이 전하신 천국의 열쇠 즉, 복음의 궁극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원하는 모든 일을 가장 알맞은 때에 모두 다 이룸으로써 그 어떤 마음의 갈등도 없는 삶, 몸은 건강하고 마음은 편안한 가운데 지복으로 넘쳐흐르는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죽은 후가 아니라 살아서 누리는 것이 복음의 궁극일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를 불행 속으로 곤두박질 치게 했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멈추고 크게 죽은 후, 크게 거듭나야 한다. 그렇게 크게 거듭난 뒤에는, 우리를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밝고 올바른 생각과 밝고 올바른 말과 밝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새 사람이 되어, 새 세상을 이룩해야 한다.

크게 죽어 크게 거듭남으로써 새 사람이 되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짐으로써, 새 하늘 새 땅이 열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하늘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새 사람으로 거듭남으로써, 맞이하게 되는 것이 새 하늘 새 땅일 뿐이다. 달리 표현하면, 이런저런 대립과 갈등의 삶을 뒤로하고, 안분지족하는 행복한 삶을 누리는 지금 여기가 곧 새 하늘 새 땅인 하늘나라일 뿐이며,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선 매 순간 스스로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온갖 주견들을 텅 비워내고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야 한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득실시비 생사거래 등 모든 양변을 여의는 바 없이 여의고 욕심 욕망 덩어리인 업(業)의 굴레를 벗어남으로써 휴거된 자를 의미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은 “천국에 가기 위해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이 있으니,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고 행하라!”고 강조하셨다. 천국에 가기 위해 먼저 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인식 주체인 나와 인식 객체인 대상 세계 즉, 주객 능소, 음양(陰陽), 나와 너로 나뉘기 전, 선악과를 따 먹기 전 일원(一元)의 세상인 하늘나라를 등기이전 한다는 말이다. 선악과를 따 먹기 이전의 에덴동산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매 순간 스스로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온갖 주견을 텅 비워내고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 성령의 도구로 쓰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불교적 표현으로는 `나 없음'의 무아(無我)를 깨닫고 크게 죽어 크게 살아나야만 시집가고 장가갈 일 없는 삶 즉, 음양과 선과 및 득실 등의 두 마음이 서로 부딪칠 일 없는 일심(一心)의 하늘나라에서 `고자'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시집 장가갈 일 없는 `고자'된 삶은 비릿한 욕정과 욕망의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뿐, 단 한 순간도 외롭지 않은 삶이다. 매 순간 인연 닿는 모든 존재들과 둘 아닌 가운데 우주적 오르가즘을 꽃피우면 사랑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생사거래, 대소유무, 선악미추 등의 양변을 여읜 가운데, 인연 닿는 모든 존재들과 하나 되는 우주적 오르가즘이 끊이지 않는 곳이 하늘나라며, 이것이 바로 참된 기도며 불공이다. 인연 닿는 모든 존재와 하나가 되는 기도와 불공은, 이웃을 자신처럼 돌보는 보살의 삶이며, 성령의 밝은 빛인 반야 지혜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낮은 곳의 티끌 먼지와도 하나가 되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삶을 말한다. 우리 백두산족의 염원인 빛의 밝음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널리 인간을 유익하게 하는 `광명이세(光明理世)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삶과도 다르지 않다. 다 함께 살기 좋은 지상낙원이여! 그 무엇에도 걸림 없는 극락정토여!! 모두가 다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는 하늘나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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