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이 자본인 시대, 예술인이 가야 할 길
문화예술이 자본인 시대, 예술인이 가야 할 길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2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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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문화예술이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 연말연시다 보니 지구촌이 크고 작은 행사로 들썩인다. 예술의 힘이 세계인의 가슴에 꽃씨를 뿌리는 시대가 도래했다. 문화예술이 도대체 뭐기에 많은 사람을 열망하게 하는가? 사전적 의미야 인간이 만들어놓은 정의이기에 누구나 익히 알겠지만, 그 내면에 존재하는 본질을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언어예술인 문학은 모든 학문에 기초가 되고 예술가들의 사상과 정신을 지탱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한때 예술가란 도대체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 하는 소용돌이에 싸인 적이 있다.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지만, 작가와 작품의 경계에서 헤매다가 니체가 고뇌한 주관적인 자신을 해방하려는 가상 속 매개자가 예술가라는 것에 공감했다. 결국, 예술 세계의 진정한 창조자는 허상이며 예술적 투영일뿐이며 우리의 삶을 미학적인 작품으로 획득하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주관인 동시에 객관이며 시인인 동시에 배우이며 관객이다.

예술이란 욕구와 순수한 관조, 다시 말해 비 미학적인 상태와 미학적인 상태가 혼합되어 있어 예술가란 모름지기 순수한 관조의 자세로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 증오와 악의로 내뱉는 욕망의 세계가 아니라 그 증오와 욕망을 극복하는 것이다. 백발의 호메로스가 놀라운 표정으로 만취한 상태로 욕설을 내뱉는 아르킬로코스를, 격정에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는 그 자리가 바로 예술가의 자리이다. 모순된 사회의 부조리를 정화되지 않은 언어나 사실 그대로 표현한다면 예술가로서 자격을 상실한 셈이다. 언어를 절제하지 못한 채 욕설을 마구잡이로 배설한다면 술과 여자로 황홀경에 빠진 탕아 디오니소스와 다를 바가 없다.

문화예술이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한 21세기, 한국은 방탄소년단(BTS)으로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 그들은 다른 예술가와는 달리 한국어로 노래를 한다. 우리의 사상과 정신이 깃든 한국어가 외국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고려한다면 문화예술이 가져다주는 파급 효과는 가히 대기업에 견줄만하다. 방탄소년단이 올해 한국에 끼친 경제적 효과가 1조원을 넘어서고 있다니 문화예술의 힘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신과 사상이 깃든 한국어의 파급 효과야말로 무한의 가치를 창출한다. 국제적으로 위상을 높이고 있는 문화예술이 국내에서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궁금해 전국을 다니며 모니터링했다. 어쩌면 변방에서 헤매고 있는 문학이 문화예술로 꽃피울 수 없을까 하는 염원 덕에 세상 구경 잘했다.

연말이라 공연 표 7장 마련해놓고 함께 갈 사람을 물색했다. 내 돈으로 표 마련해 공연 보러 가자고 구걸하다시피 했지만, 다들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사정하다시피 모은 다섯 명과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장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많은 사람으로 가득 메웠다.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계층이 따로 있겠지만, 모든 국민이 즐기기에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것 같다.

본성이 지닌 증오와 욕망이 가상의 시공간을 통해 구원할 수 있도록 형이상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미학이 바로 예술이다. 고통과 모순으로 가득 찬 삶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주는 것이 문화이고 예술이다.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을 문화예술로 충족할 수밖에 없다. 예술가의 낯설게 하는 메타포가 바로 자신의 한계를 지키는 절제미가 아닐까? 소포클레스와 키케로는 인간에게 제일 좋은 일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그다음으로 좋은 것은 가능한 빨리 죽는 것이 지혜라고 했다. 한 번 왔다가 가는 인생, 새해에는 예술인의 자세로 사심 없이 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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