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12월은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9.12.25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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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눈길을 옮기다가 12란 수에서 멈추어 섰다. 벽에 붙어 있는 달력이 동지임을 말해준다. 초조해지는 시각이다. 나이는 어김없이 한 살을 보태고 자꾸만 주름살을 늘려가고 있다. 갈수록 빨라지는 속도감은 어지럼증이 난다. 아무리 줄여보려 브레이크를 밟아도 이미 속력을 낸 나이는 가속페달로 변속하는 묘한 재주를 부린다.

12는 신비스런 숫자다. 우주의 질서와 함께 완전한 주기를 상징한다. 1년의 달수, 하루를 오전과 오후로 나뉜 시간이 12다. 그리스 신화의 신과 인도 경전 베다에 등장하는 신의 수도, 예수의 제자도 12다. 동양의 간지(干支)를 이루는 12지도 마찬가지다. 피아노 건반의 1옥타브를 이루는 반음의 수나 키보드의 기능키도 같은 수다. 이런 이유로 12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성한 숫자 대접을 받아왔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즈음에 교수들이 그 해의 사회상을 담아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올해는 의견을 모아 공명지조(公明之鳥)를 뽑았다. 우리의 현재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단어다. 덧붙여진 설명에는 마치 공명조(公命鳥)를 바라보는 것만 같아서 선택했다는 것이다.

공명조(公命鳥)는 슬픈 전설의 새로 한몸에 머리가 둘인 새다. 둘은 언제나 교대로 잠을 자거나 깨어 있다. 하나의 몸통으로 목숨을 같이하는 운명이다. 상생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시기와 질투를 했다. 하나가 자는 사이에 깨어 있던 다른 하나가 몸에 좋고 맛있는 열매를 혼자만 챙겨 먹었다.

이를 안 다른 머리가 못내 섭섭하고 분한 마음을 누르지 못해 어느 날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었다. 상대에게 고통을 줄 요량으로 저지른 일이다. 결국 독이 온몸에 퍼져 둘 다 죽게 되었다. 자신도 죽을 줄 모르던 어리석은 이 새는 히말라야의 높은 설산이나 극락세계에 사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상상의 새라고 한다. 공명조를 빌어 사람들의 아둔함을 일깨우고 싶은 의도였으리라.

공명지조(公明之鳥)는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분열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꼬집는다. 어느 한 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잘살게 될 거라 생각하지만 모두가 공멸하게 된다는 안타까운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남을 밟고 일어서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이기심으로부터의 자성을 하라는 울림인 듯하다.

이 울림은 나로부터 출발하여 가정으로 공명되어야 한다. 나아가 사회로까지 진동이 이어져 나란히 어깨를 부딪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삶. 너도나도 함께하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세상임을 말해주는 사자성어다.

도랑을 펄쩍 건너 뛰어온 12월. 가는 서운함은 있어도 후회는 없다. 이만하면 열심히 살았다. 여전히 나이가 느는 것에 대한 체기는 있지만 거부하지 않는다. “이제 장미는 없지. 그 대신 국화가 있지” 어디서 들은 지도 모를 대사가 떠오른다. 이제 내 나이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새해의 계획을 세우기 전에 지난해를 뒤돌아보게 된다. 아름다운 시작을 꿈꾸기보다 아름다운 끝을 선택하게 되는 달이다.

충청북도 교육청은 2020년 사자성어를 시우지화(時雨之化)로 택했다고 한다. 때를 맞추어 내리는 비라는 뜻이다. 초목의 생장에 있어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제때에 비가 내리면 그 성장이 빨라지니 얼마나 희망적인 메시지인가. 경자년에 선정되는 사자성어는 따뜻한 온기를 담은 단어이기를 소망해 본다.

나의 올해의 사자성어는 무엇일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의 고진감래(苦盡甘來)가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온다. 지금까지 잘 견뎌 준 나에게 주는 위로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이해인 수녀님의 12월의 시로 기해년을 마무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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