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나가의 이주 정책
노부나가의 이주 정책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12.2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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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군웅이 할거하던 전국시대 일본 통일을 목전에 뒀던 인물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그의 시종 출신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가 수족처럼 부리던 휘하 영주에 불과했다. 그가 일찍 죽지만 않았다면 히데요시나 이에야쓰는 그저그런 인물로 남았을 것이고, 일본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의 나고야 일대를 기반으로 열도 평정에 나선 그는 이웃 영지를 정복하고 영토를 확장하면 아예 거점을 그곳으로 옮겼다. 말하자면 수도를 새로운 정복지로 옮기는 것이다. 신속하게 정복지에 지배권을 구축하고, 다음 전쟁에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첫 이주는 순탄치 않았다. 가신들이 문제였다.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일시에 버리고 식솔들까지 거느려 낯선 타향으로 떠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냉혹하기 짝이 없는 노부나가였지만 전 가족 이주 지시만큼은 먹혀들지 않았다.

눈치만 보고 차일피일하는 휘하 참모들을 지켜보던 노부나가가 마침내 극약처방을 내렸다.

“기한 내에 이사를 하지 않으면 집에 불을 지르겠다”.

가신들은 설마 했지만, 노부나가는 경고를 가차없이 실행했고, 이후 집단이주는 매우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2채 이상 주택을 보유한 비서관급 이상은 1채만 남기고 나머지는 처분하라”고 권고했다. 민주당 원내대표는 내년 총선 후보자들에게 `1가구 1주택' 원칙을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총선에 출마할 사람들은 집 정리부터 하라는 얘기다. 홍남기 부총리도 집 팔기 캠페인에 가세해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고위공직자도 한 채만 빼고 처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자신도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을 완공 후 팔겠다고 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서울과 세종의 집 두 채 중 세종시 아파트는 매각하겠다”고 발 빠르게 화답해 청와대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는데 성공했다.

정부와 여당이 재산권 침해 논란까지 무릅써가며 공직자들을 몰아붙일 정도로 화급해진 이유는 자명하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일관해온 부동산 정책들이 청와대에서 참사를 빚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소유한 부동산 시세가 3년간 평균 3억원 넘게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부동산 정책을 주도했던 김수현·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아파트 값은 10억원 이상 올랐다.

3주택 이상 다주택자도 3년 새 2.5배 늘었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무려 18차례에 걸쳐 투기 억제를 골자로 한 부동산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동안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는 20% 안팎 올랐다. 대부분 지방 주택시장은 찬바람만 불어 서울과 지방 주민의 자산격차는 더 커졌다. 집값 상승의 속도가 역대 정권 중 가장 빠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18번째 대책도 벌써부터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주택자들이 늘어나는 세금 이상으로 전세를 올려 서민들을 옥죄는 방식으로 정책에 저항하고 있다는 보도도 눈에 띈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57.6%가 `대책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고위 공직자나 총선 후보자들을 다그치는 감성적 어필로는 바닥에 떨어진 믿음을 되살릴 수 없다. 그들이 여분의 집을 팔지 않는다고 노부나가처럼 집을 태워버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앞에서 노부나가의 사례를 언급한 것은 부동산 광풍을 잡기 위해서는 멀쩡한 집에 불을 지를 정도의 비상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경실련조차도 `불로소득 주도 성장정책'을 펴고 있다고 정부를 조롱하고 있다. 보다 실질적인 정책에 주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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