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야
에미야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9.12.1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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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드디어 손주 녀석이 태어났다. 그렇게 배가 부르더니 4.2kg이나 되는 건강한 아이다. 요즘 모두들 수술을 원한다는데 며느리는 자연분만을 고집했다. 감사한 일이다. 또 감사한 일은 2년 전 손녀를 안겨주더니 이번엔 손주다. 그야말로 200점 며느리다.

아이를 갖으면서 아들 부부는 태교에 신경을 썼다. 사실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 말을 거는 게 어색하고, 듣지도 못하는 아기에게 무슨 영향이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그게 아니었다.

며느리는 수시로 뱃속 아기와 대화를 했고 따뜻한 동화를 읽어주기도 했다. 특히 내가 쓴 동화집 “껄떡새와 꿀꺽새”를 열심히 들려주곤 하였다. 할아버지로서 또 다른 감흥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바삐 사는 아들도 틈나는 대로 배에 대고 서투르지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또 다른 혈육 간과 가족애를 느꼈고, 아들 부부에겐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며느리는 임신 내내 태교를 열심히 했고 배냇저고리와 발싸개 겉싸개 등 육아용품을 준비하며 행복해 했다. 그 모습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아기도 뱃속에서 느꼈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으로 기다리면서 이야기하는 엄마의 마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지는 것. 클래식을 들으며 동화책을 읽어주던 며느리.

교육에 관한 성어가 많은 만큼 가르치는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도 많다. 검은 먹을 가까이하면 자신도 검어진다. 近墨者黑(근묵자흑)이다. 孟子(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이사를 하며 교육환경 좋은 곳을 골랐다. 孟母三遷(맹모삼천)이다. 남쪽의 귤이 북방에 가면 탱자로 되는 南橘北枳(남귤북지, 枳는 탱자 지)도 알려졌다. 삼밭 가운데서(麻中) 자라는 쑥(之蓬)이라는 이 성어도 죽죽 곧게 자라는 삼밭에서는 아무렇게나 커가는 쑥도 영향을 받아 바르게 클 수밖에 없다. 환경이 좋거나 선량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자연스레 주변에 따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荀子(순자)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性惡說(성악설)을 주장해 맹자에 맞섰던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 荀況(순황)의 저작이다. 첫 부분 勸學(권학)에 실려 있는 옆으로 벋으며 자라는 쑥도 곧게 자라는 삼밭에서 자라나면 붙잡아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蓬生麻中 不扶而直/ 봉생마중 불부이직) 에서 나왔다. 蓬生麻中(봉생마중)이란 성어도 출처가 같다. 바로 이어지는 부분이 하얀 모래도 검은 진흙 속에 있으면 모두 검어진다(白沙在涅 與之俱黑/ 백사재열 여지구흑)이다.

다른 예도 재미있는 것이 많다. 서쪽 지방의 길이 네 치의 작은 射干(사간)이란 나무는 높은 꼭대기에 자라서 먼 곳을 볼 수 있다. 이런 자리를 잘 잡은 것과 반대로 남쪽 지방의 蒙鳩(몽구)라는 새는 둥지를 튼튼히 지어도 갈대에 매달았기 때문에 부러져 새끼를 죽게 한다. 향기가 좋은 槐(난괴)의 뿌리 芷(지)가 흙탕물에 잠기면 그 향초에 군자든 일반 사람이든 가까이하지 않는다. 芷漸?(난지점수)란 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악한 사람을 가까이하면 반드시 자신도 화를 입게 된다고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고 했다. 공익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공직자가 이권을 노리고 접근하는 무리들에 의해 뇌물을 받고 쌓아온 명예를 먹칠하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사람에게 있어서 주위환경은 커다란 영향을 준다. 비록 뱃속에 있어 듣지 못하고 보지는 못하지만 아이에게 커다란 영향이 미칠 것이란 믿음으로 태교하는 동안 항상 온화한 마음가짐과 올곧고 따뜻한 생각을 함으로써 건강한 아기가 탄생했다.

“아가야”하고 불렀는데 이제는 “에미야”하고 부르게 된 며느리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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