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비의 열망이 만들어낸 문화의 메카, 진천 완위각
한 선비의 열망이 만들어낸 문화의 메카, 진천 완위각
  •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 승인 2019.12.1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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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최근 책과 관련된 TV 프로그램이 다시 인기다. 책을 다룬 프로그램은 예전부터 꽤 인기가 있었다. 2001년 전 국민적인 관심을 일으키며 지역별 기적의 도서관 건립까지 이끌어 냈던 MBC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부터 2011년 KBS의 《즐거운 책읽기》, 2015년 tvN의 《비밀독서단》, 2019년 《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 등등 잊어버릴 만하면 책 관련 프로그램이 등장한다. TV뿐 아니라 유튜브나 팟캐스트 같은 뉴미디어에도 독서 관련 콘텐츠는 참 많다. 이런 걸 보면 사람들에게 책이란 늘 다가가고 싶은 동경의 존재인 듯싶다.

책에 대한 동경은 비단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선 후기 유행하였던 책가도(冊架圖)만 보더라도 우리 조상의 책에 대한 열망이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다. 책거리라고도 불리는 책가도는 서책, 문방구, 도자기 등이 진열된 책장을 그린 그림으로, 18~19세기 대대적으로 유행했다. 조선 22대왕 정조도 책가도를 매우 사랑해, 궁중화가를 뽑는 시험에 책가를 그리는 문제로 내기도 하였고, 어좌 뒤에 책가도 병풍을 두고 신하들과 환담을 나누어 즐기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완위각(宛委閣)은 그야말로 당대 핫 플레이스였다. 조선 숙종 때 유학자 이하곤(李夏坤)이 지은 이 전각에는 만여 권의 책이 가득 차 있어 만권루(萬卷樓)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향하는 선비들이 일부러 진천을 들러 완위각을 둘러볼 정도로 이곳의 명성은 자자했다. 조선 영조 때 서예가였던 강준흠은 완위각을 이정귀의 고택, 류명천의 청문당, 류명헌의 경성당과 함께 조선 4대 장서각 중 한 곳으로 꼽기도 하였다.

진천군 초평면에 이렇게 유명한 문화 명소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담헌 이하곤(1677~1724)의 책에 대한 무한한 애정 덕분이었다. 이하곤은 32세 나이에 진사시에 장원을 하였지만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책과 산수를 벗하며 완위각에 은거하였다. 그는 병적일 정도로 책을 좋아해, 책을 파는 사람을 보면 입고 있던 옷을 벗어서 책을 살 정도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본인 스스로 전생에 “살아서나 죽어서나 책 속을 떠나지 못하는 좀벌레”였을 것이라 칭했을까?

그런 그의 사랑은 진천에 있는 한 작은 전각을 조선 최고 문화의 메카로 만들었다. 이하곤 이후 200여 년 동안 완위각은 호서지방 제일의 장서각으로 당대 명사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많은 선비가 이곳을 찾아 책을 읽고 지식과 친분을 나누며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한말에는 이상설, 정인보, 홍승헌 등 우국지사들의 은신처로 활용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면서 완위각은 완전히 파괴되어 지금은 그 흔적만이 남아있으며, 수많은 장서도 대부분 사라지고 800여 권만이 종중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최근 진천군에서 사라진 완위각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비록 이하곤이 직접 세운 완위각의 위용은 이제 볼 수 없지만, 새롭게 탄생할 완위각과 초평 책마을 조성사업을 통해 새로운 문화의 바람이 진천을 넘어 충북에 불어올 것을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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