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스승이다
누구나 스승이다
  •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 승인 2019.12.1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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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날마다 조금씩 해가 짧아지더니 퇴근 무렵 하늘이 어제보다 캄캄하다. 코끝이 싸해지는 바람 탓인지, 어두운 하늘 탓인지 똑같은 시각인데 왠지 더 피곤하다.

집에 들어서자 몸은 본능적으로 따뜻한 곳을 파고든다. 뜨거운 물에 달큼한 유자청을 타서 담요를 길게 늘어뜨려 덮고는 상념 없이 텔레비전 리모컨을 만지작거린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나도 모르게 손이 멈춘 화면. 녹색 잔디 위에 펼쳐지는 좌충우돌 축구팀 이야기이다. 한때 대한민국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던 스포츠 일인자 전설들이 모여 조기축구팀을 결성했다.

그런데 전국 축구 고수와 대결을 펼치며 조기축구계 전설로 거듭나겠다는 야심 찬 시작과는 달리 초등학생 팀에게도 패하기가 일쑤다. 각각의 영역에서 대한민국 최고인 선수들이 축구 경기장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그 심정이 오죽할까 싶지만, 그들은 실패와 좌절을 딛고 값진 승리의 순간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한참이나 후배인 축구 감독에게 깍듯하다. 평생을 배우고, 누구에게라도 배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지난 주말 `학교를 바꾸다' 교원 연수가 진행되었다. 연수 주제를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현장 선생님들이 필요로 하는 요구를 받아들여 기획하는 연수다.

이번에는 학교 공간 변화를 모색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담아, 학생들이 참여해 공간을 재구성한 학교로 직접 찾아가서 연수를 진행했다.

강의장을 가득 메운 선생님들의 눈빛이 반짝거리던 연수 첫 시간. 뒷문으로 빠끔히 고개를 들이미는 학생들이 있다.

한 손에는 먹던 막대사탕이 들려 있고 특별할 것 없이 주변에서 늘 만나는 중학생 아이들. 이 아이들이 이번 연수 첫 시간 강사이다. 충청북도교육청의 뉴스페이스 사업에 선정되어 학교 공간 재구성 설계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이다. 아마도 연수원 역사상 최연소 강사가 아닐까?

학생회 임원도 아니고, 말을 특별히 잘하거나 평소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을 한 것도 아니라는 아이들이다. 이제 학교를 떠나면 그만인 3학년 졸업반이지만 후배들이 다닐 학교 공간을 더 편안하게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2학년 학생은 설계과정에 참여하면서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1학년 학생은 소통이 있는 공간, 자연과 만나는 따뜻한 학교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가끔 학교를 찾는 손님들을 위한 공간이던 중앙현관은 학생들이 참여한 재구성 과정을 통해 아이들의 공간이 되었고, 아이들은 학교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다.

한유(韓愈)는 그의 「사설(師說)」에서 나이나 신분을 묻지 않고 “도(道)가 있는 곳에 사(師)가 있다.”고 했다. 스승을 특정한 사람으로 규정하기보다는 도(道)를 가르치고, 실천적 모범을 보여주고, 의혹을 풀어주는 사람은 누구나 스승이라는 것이다.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길을 찾는 일이며 길을 만드는 일이다. 스승은 실천의 과정에서 동반자처럼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누구나 우리의 스승이다. 자신이 경험한 삶의 발자국을 나누어준 학생들에게 감사하다. 주말을 반납하고 아이들에게서도 기꺼이 배우는 선생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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